▲ 필자가 30년 동안 살았던 공장 기찻길 동네(동구 송현3동).

새해를 맞아 '고향' 송현동에 잠시 다녀왔다. “다들 놀랐지. 그게 여기에 세워진다고 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한 지인이 불쑥 '이건희 기증관'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해 11월 여러 지역의 유치 경쟁 끝에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여 점이 '송현동에 자리 잡는다'는 소식을 접한 동네 사람들은 살짝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서울 경복궁 옆에 송현동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각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서로 고향을 얘기하던 중 “인천 송현동 출신”이라 하니까 한 서울 친구가 “좋은 동네에서 온 도련님”이라고 해서 무척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에도 '송현동'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종로구 송현동은 실제로 '도련님 네' 동네로 통했다. 조선시대 때 궁궐에 가까워 오랫동안 이른바 뼈대 있는 집안들이 자리 잡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의 직원 사택이 들어섰다. 일본 패망 후에는 미 대사관 직원 관저가 그 동네에 터를 잡았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공예박물관을 비롯해 20여 개의 박물관, 미술관이 밀집해 있고 북촌 한옥마을, 인사동 등이 인접해 있는 등 도심 문화·관광의 요지 중 요지로 꼽힌다.

내 고향 인천 송현동은 어떤 동네인가. 한때 송현동을 '똥고개'라고 통칭해서 불렀던 시절이 있다. 한마디로 '후진 동네' 취급을 받았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어디 사냐”고 물으면 “동인천역 뒤편 동네”라고 어물쩍 답하곤 했다. 일 년 내내 제철공장의 높다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우리 동네 하늘은 늘 잿빛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가, 어느 수필가가 쓴 글귀에 격하게 공감한다. “나의 어머니가 비록 문둥병 환자라 할지라도 나는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 태어나서 30년 넘게 살았던 고향 동네에 요즘 부쩍 발걸음을 자주 한다. 경복궁 옆 송현동보다 제철공장 옆 송현동이 훨씬 좋다. 나의 고향이 똥고개라 할지라도 나는 이건희 기증관과 바꾸지 않겠다. 올 한해도 틈나는 대로 송현동을 비롯해 인천의 오래된 골목을 만보(漫步)할 것이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