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이후, 일제 잔재가 제때 청산되지 않아 한국 현대사는 진통의 연속이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시시때때로 친일 논쟁이 일어나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해왔다.

이런 친일 논쟁은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심각한 것은 일제 잔재인지조차 구분 못 하고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경기지역 일부 학교에서는 일장기와 욱일기, 전범 기업 로고 등을 연상하는 교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방 이후 설립된 학교들도 교표를 지정하면서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일제 잔재 상징을 넣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어처구니없게도 일제 잔재를 제때 청산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경기도교육청이 2019년 도내 2419개 학교를 대상으로 교표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들여다보면 충격이 크다. 이 조사에서 일장기와 욱일기, 전범 기업 로고 등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판단되는 학교가 21개에 달한다. 이 중 일제강점기에 개교한 학교는 4개교뿐이다. 나머지 17개교는 해방 후 개교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대별로는 1950년대 개교한 학교가 2개교, 60년대 5개교, 70년대 2개교, 80년대 3개교, 90년대 2개교, 2000년대 3개교가 일제 잔재 문양이 포함된 교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표 모양도 가지가지다. 이천 한 고등학교와 오산 한 초등학교의 교표는 백색 바탕 전 중앙에 동그란 적색 문양이다. 각각 주황색 띠와 녹색 받침 모양을 추가했지만, 일장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교표다. 평택에 있는 두 학교의 교표는 항공자위대의 상징과 닮았다. 매의 날개에 일장기를 얹은 모양이다. 전범기업인 미쓰이 그룹과 똑 닮은 교표도 2개 학교에서 발견됐다. 부천 한 초등학교의 교표는 미쓰이 그룹 로고에서 색깔만 다르다.

이에 대해 허은철 총신대 역사학과 교수는 “일부 학교들이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교표를 사용하는 이유는 확실치 않다”면서도 “아무래도 우리 안에 상징이 뿌리 박혀 있는데, 이를 일제 잔재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사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교표와 교가뿐만 아니다. 12개 학교에선 친일 행적자를 기념비와 송덕비, 공덕비, 장학기념비 등으로 기리고 있다. 물론 친일행적 등은 설명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이 기념비 등의 내용을 보고 친일 행적자를 긍정적으로 볼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청산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관 주도로 강제 청산에 나섰다가 또 다른 분란이 예상되기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진행하고 있는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 주목받을 만하다.

도 교육청은 일선 교육공동체 나서서 일제 청산하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내년에도 독립운동사와 근현대사 탐구,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4억8000여만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올해에만 도 교육청의 지원 받아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도내 16개 학교가 교가와 교표를 바꿨다. 관심을 끄는 것은 학생 주도로 만든 프로젝트를 통해서 진행했다는 점이다.

안성 동신초등학교의 경우 기존 교표가 원형 부채꼴 모양에 손잡이 부분에서 빨간 반원이 위쪽으로 퍼져나가는 마치 욱일기를 잘라놓은 모양이었다.

동신초는 79번째 개교 기념을 맞이해 학생자치회 주도로 교표변경 학생 동아리 DMCC(Dong shin Mark Change Club)를 만들었다.

동아리는 먼저 제암리 사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만행을 공부했다. 이를 바탕으로 교표를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한 강의 영상, 광고, 홍보물을 제작해 각반과 학부모 밴드 등에 홍보했다. 결국 동신초 교육공동체는 교표를 바꾸기로 합의했다.

동신초는 학교를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교표 공모전을 벌였고 전교생 상대로 투표를 진행해 새로운 교표를 선정했다. 교표를 바꾸는 과정은 비단 일제 잔재를 청산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계획해 근현대사의 아픔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 학교는 교육공동체가 일제 잔재 청산을 역사 교육 현장 프로그램으로 활용한 모범사례를 만들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제때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가 삶 속에 뿌리 깊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제 잔재 청산은 늘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더 많은 학교가 동신초처럼 일제 잔재 청산하는 일에 나서주기를 응원한다.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