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법원읍 갈곡리 칠울은 산골 분위기가 짙다. 마을 뒷산 자웅산과 노고산 높은 봉우리라야 고작 해발 400m 수준이지만, 산세는 꽤나 가파르다. 동쪽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스르내미 고개라 불린다. 장정 스무 명은 모여야 안심하고 넘어갈 정도로 험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칠울은 칡이 무성한 골짜기라는 뜻이다.

1890년대 초반 천주교인 몇 가족이 우골(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에서 칠울로 옮겨왔다. 칠울에서 옹기 굽기 좋은 흙이 나고, 골이 깊어 땔감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천주교가 이미 1882년에 공인되었어도 박해시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터라 칠울이 숨어 살기 좋은 장소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양주 우골 역시 강원도 풍수원 은거 신도들이 옮겨 와 터를 잡았던 곳이다. 칠울로 이주한 신도들은 1898년경 상주 신부가 없어도 미사를 올릴 수 있게 공소를 세웠다.

갈곡리 공소는 2018년에야 준본당으로 승격했다. 그러니까 무려 한 세기 동안 공소였다는 얘기다. 칠울 공소는 100년 세월 마을을 지키면서 조금씩 조금씩 향기를 더해갔다. 갈곡리는 성직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로 유명하다. 구두 만드는 도제로 함경도 덕원수도원에 들어가 신학생이 되고 마침내 사제 서품을 받은 김치호 신부와 그의 누이 김정숙 수녀를 비롯해 이곳 출신 성직자가 20명이 넘는다. 옹기장이의 딸과 아들인 김 수녀, 김 신부 남매는 광복 후 모두 순교했다. 칠울이 얼마나 뿌리 깊은 신앙 공동체였는지 짐작케 한다.

갈곡리 공소는 아름다운 공소 건물로도 유명하다. 예전 공소가 한국전쟁 때 불에 타버리자, 미군 해병대와 한국군 해병대 종군신부가 재건에 뜻을 모았다. 에드워드 마티노 신부와 김창석 신부는 합창단을 조직해 전국을 돌며 성금을 모으는 노력 끝에 1955년 아담한 석조 성당을 완공했다. 갈곡리 새 공소 건물은 의정부 주교좌성당과 외형이 상당히 닮아 '쌍둥이 성당'으로 불릴 정도다. 갈곡리 성당 건물은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11월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갈곡리 공소 마당에서는 1983년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하는 성체대회가 거행되기도 했다.

칡은 생명력이 끈질기다. 줄기가 말라 죽어도 뿌리는 살아 다음해 다시 넝쿨을 뻗고 꽃을 피워낸다. 심심산중 보라색 칡꽃은 맑고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린다. 지역문화 또한 긴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향기를 머금어야 제격 아닐까. 경기도 문화도시·문화자치 관련 뉴스를 읽다가 몇 해 전 답사한 갈곡리 성당이 떠올랐다. 정갈했던 성당 내부와 시원하게 뻗은 성당 옆 금강송이 여전히 삼삼하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