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지키려는 이들은 개혁 이룰 수 없어
▲ 蠱(고)는 그릇(皿명)에 담아 놓은 음식에서 생기는 벌레(蟲. 虫충)다. /그림=소헌
▲ 蠱(고)는 그릇(皿명)에 담아 놓은 음식에서 생기는 벌레(蟲. 虫충)다. /그림=소헌

어떤 중년 부인이 고해성사를 하였다. “신부님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면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뽐냅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뭇 남자들을 매혹魅惑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고백을 들은 신부는 칸막이 커튼을 살짝 들어 올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답했다. “자매님 안심하세요. 그것은 죄가 아니라 착각입니다.”

주역 열여덟 번째 괘인 山風蠱(산풍고)는 산(山)을 뜻하는 艮(간)이 위에 있고, 바람(風)을 뜻하는 巽(손)이 아래에 놓였다. 바람은 산중턱 위를 쓸고 지나가야 유익한데, 산 아래에서 바람이 부는 형상이니 이로울 수가 없다. 먼지를 일으키거나 과실을 떨어뜨리는 등 혼란하기만 할 뿐이다. 또한 蠱(고)는 중년 부인이 젊은 남자를 고혹蠱惑하여 은밀한 만남을 이루는 형상이기도 하다. 그릇 속에 여러 마리의 독벌레를 넣으면 서로 싸워 다른 녀석을 잡아먹는다. 이때 최후에 남은 벌레가 '蠱'다. 蠱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뜻으로도 쓰여, 재물을 잃은 상대방이나 자기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가 된다. 음식이 썩으면 벌레가 우글거린다. '山風蠱'는 부패腐敗를 뜻하는 괘다. 정치의식이 타락하거나 인륜이 어긋나서 흉악함을 상징한다.

부처분승(腐處糞蠅) 아는 데는 똥파리. 똥파리가 용케도 썩은 음식이 있는 곳(腐處)을 알고 달려들 듯 무슨 일을 재빠르게 알아채 시끄럽게 구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이놈이 앉았던 음식을 잘못 먹으면 뱃속에서 기생충(蠱)이 생겨 배탈이 나게 된다. 투기해서 먹은 자들을 설사하게 하여 자연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蠱(蛊) 고 [뱃속벌레 / 요염하다]

①蠱(고)는 그릇(皿명)에 담아 놓은 음식에서 생기는 벌레(蟲. 虫충)다. ②똥파리(蟲)가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미혹迷惑하다는 뜻이 나왔다. ③꿈틀거리는 굼뱅이(蟲) 모습을 중후한 여성의 알몸으로 비유하여 '요염하다'고도 쓴다. ④고혹蠱惑은 아름다움이나 매력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거나 남의 마음을 호려 중용을 잃게 함을 말한다. ⑤아직(未미)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예쁜 여자에게 반할 때를 도깨비(鬼귀)에게 홀렸다고 하는 매혹魅惑과도 같다.

 

惑 혹 [호리다 / 미혹하다]

①或(혹)은 창(戈과)을 들고 성(口국)을 지키는 모습에서 왔다. '혹시'라도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②매력魅力으로 남을 유혹하여 정신을 흐리게 하거나 그럴듯한 말로 속여 넘기는 것을 '호리다'고 한다. ③성에 오고가는 사람들을 감시(或)하며 의심(心)하는 데에서 미혹迷惑이 나왔으니, 무엇인가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재물에 미혹하다.

 

대부분 사람들의 투기의식을 감싸고 있는 LH 사태와 권력과 돈이 얽혀 부패한 대장동 비리를 한 글자로 하면 '蠱'다. 주역 괘사는 '큰 내를 건너면 이롭다(利涉大川)'는 글로 시작한다. 근심과 걱정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轉禍爲福)는 말이다. 이때 자연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개혁이다. 오랫동안 썩어 쌓인 폐단 그것을 적폐積弊라고 하는데, 부패를 일소하는 방법으로 중용中庸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공정과 정의를 통해서 시현된다.

남몰래 숨어 있는 당대표를 찾아간 야당 대권후보가 호불호 논란을 일으키는 선대위원장을 세우겠다고 한다. 여당은 양도세를 완화함으로 불로소득 감세를 담합했다. 권력이나 재물이 썩으면 벌레가 꼬이듯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똥파리들만 모인다. 그들은 절대로 개혁을 이룰 수 없다. 썩은 먹이를 차지하려는 본성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