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국제공항에 마차가 들어와 짐을 나르는 것을 본 것이 1989년인데 당시를 생각하면 오늘날 상해시의 발전은 격세지감이 있다.
 당시의 상해박물관은 중국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이지만 가서 보니 듣던 것과는 달리 건물도 빌려쓰고 전시방법이 조잡해 실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자주 찾는 오늘의 상해박물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천하""라는 중국고대의 우주관을 상징하는 멋진 건물로서 1996년 10월, 인민광장에 개장한 것이다.
 금년 4월부터 연말까지 이곳에서는 진국기진(晋國寄珍)이라는 주제 하에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제후의 무덤에서 나온 청동기, 편종을 비롯한 진기한 유물과 무덤의 축성과정 및 내부를 현실감 있게 재현해 놓은 특별전시회를 하고 있다. 역시나 1층은 황하문명의 꽃이며 열매인 청동기를, 그리고 2층에는 신석기 시대의 채도로부터 경덕진채자(景德鎭彩瓷)에 이르기까지가 전시되어 있는 것은 전과 다름없었다. 3층은 송나라에서 시작하여 청대까지의 이름난 명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보고 또 봐도 발걸음이 돌아서질 않는다.
 일행과 함께 오전 내내 관람하고 항시 하는 버릇으로 박물관 부속 서점을 찾았다. 근래 발행된 `해외장중국역대명화(海外藏中國歷代名畵)""가 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 여덟 권의 화집은 호남미술출판사에서 발행하고 남경미술학원의 린수중(林樹中) 교수 팀이 10여 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이루어 낸 장거라 할 수 있다. 이는 공개적으로 전시되어 있거나 비공개로 소장된 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중국회화의 정수들, 나라가 어려울 때 헐값에 팔리거나 약탈당했던 혹은 의식없는 이들에 의해 뇌물이나 선물로 넘어갔던 역사적인 진보(珍寶)를 찾아 그 실체를 파악한 쾌거인 것이다. 린 교수는 24개국의 180여 개 박물관 및 미술관을 찾는 고생뿐만 아니라 2만여 점의 작품을 찾아 그 중 2천여 점을 선정하여 일일이 진위를 가려내고 권위 있는 전문가에게 하나하나 기명으로 해석, 설명케 하여 크게 신뢰를 쌓는 결과를 낳았다.
 박물관과 미술관마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수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전시한 박물관 및 미술관의 수는 일본이 85곳, 미국이 63곳, 영국과 독일이 각각 5곳이 된다.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당나라 때의 작품 `복희와 여와"", `합장보살""과 평양박물관도 동한(東漢) 때 작품 채협화인 상산사호(商山四晧)가 수록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중국인들은 전세장서(傳世藏書) 120여 권을 발간했었는데 이것은 의서를 비롯한 병서, 경서, 역사, 문학, 예술을 집대성한 중국고전의 전적이었다. 이 또한 놀랄만한 학문적 성취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스스로가 황하문명의 꽃이며 열매라고 자랑하는, 그러나 세계 각처에 흩어져 타관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들의 청동기와 채도, 그리고 도자기, 불상, 조각 등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해왔을 것이고 지금도 진행 중일 것이다. 단기간 내에 할 수 없는 일들을 그들은 하나하나 치밀하고 차분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개혁 개방한지 20년이 좀 지났다. 이들의 발전은 자체모순은 있다 하더라도 누가 보아도 눈부시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20여 년 동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자제들이 5년을 주기로 철창행을 면치 못했다. 한국은 그만큼 민주화되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여야를 불문하고 부끄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 소란했던 지방선거도, 월드컵도 지나갔다. 이제 차분히 앞으로 백 년을 생각할 때가 아닌가!
 외국에 산재해 있는 역사적 유산인 보물을 회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 것의 소재 및 품목 그리고 조상의 혼과 노력으로 빚어진 작품들이 국적을 잃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연구해야 하는데 이것은 책상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땀과 치밀한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시간과 싸우면서 혼신을 바쳐야 할 것이다.
 지중해가 없다면 오늘의 서양문명도 없다고 하는데 1000년 전 지중해와 인도양을 넘나드는 선원들의 공용어는 아랍어라고 되어 있다. 1000년 전 가야, 백제, 신라와 교역했던 일본과의 상용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자료가 부족하다는 탓으로 빗겨갈 일이 아니라 학자와 나라, 시민이 함께 관심을 보일 때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