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경기 12잡가’를 완창한 7살 국악 신동의 소식이 본지 지면을 장식했다.'인천일보 2002년 10월31일자 9면 ‘7살 국악신동 ‘경기 12잡가’ 완창’'
경기 12잡가는 한자어로 이뤄진 데다가 완창하려면 꼬박 2시간 이상이 걸려 기성 국악인도 완창하기 어려운 노래다.
만 7세(당시 인천중앙초등학교 2학년)라는 어린 나이에 경기 12잡가 완창에 성공한 전병훈 군은 작은 몸에서 나오는 당찬 목소리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당시 인천종합문예회관)을 가득 메워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박수를 받았다. 19년이 흐른 지금, 그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
'빽투더인천'이 시대를 노래하는 소리꾼으로 성장한 7살 국악 신동, 전병훈 소리꾼(28·사진)을 다시 만났다.
2002…경기 12잡가 완창 ‘국악 신동 전병훈’
타고난 끼와 천재성으로 당시 국악계를 놀라게 한 전병훈 소리꾼은 지금까지도 국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19년 전 그날 경기 12잡가를 부르며 느꼈던 기대와 부담감을 이제서야 털어놨다.
“어렸지만 부모님,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관심과 기대를 알고 있었어요.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더 그 무대를 기대하게 됐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퇴장할 때 굉장히 시원섭섭했던 감정이 기억납니다.”
그는 동네 학원에서 우연히 국악을 처음 접하게 됐고 국악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경기 12잡가’ 완창에 성공했다. ‘국악 신동’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이 수식어가 항상 달갑지만은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관심과 박수를 받으면 좋아하듯이 어릴 적엔 신동이란 말이 칭찬 그대로 와 닿았지만, 청소년기와 갓 성인이 돼서는 아이가 아닌 소리꾼 전병훈으로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반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리꾼으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지금은 국악 신동이라는 말이 정겹고 그리워요. 지금의 전병훈을 있게 한 고마운 수식어죠.”
인천 각지에서 공연...전병훈 소리꾼의 인천
인천에서 태어난 전 소리꾼은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어린 나이에 인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인천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향교, 원인재 등 인천의 명소에서 공연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어요. 특히, 인천국제공항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국제공항에 가서 공연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미래에 온 것 같았어요.”
최근에는 서울의 제자들을 데리고 월미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차이나타운에서 송월동 동화마을을 지나 월미도까지 가는 길을 좋아해요. 얼마 전에 서울 제자들을 데라고 한번 다녀오기도 했는데 어른이 되어 제자들을 데리고 인천에 오니 특별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2021…국악의 역사 연구하는 ‘소리꾼 전병훈’
전병훈 소리꾼은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병훈 밴드의 보컬이자 사단법인 경기음악연구회의 대표이기도 하다. 전통 음악을 새롭게 창조하기도 하고, 과거의 소리를 다시 되돌아보기도 한다. 국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어떤 음악인이든 대중과 호흡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병훈 밴드를 시작하게 됐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앞으로 잊히고 잃어버린 전통 음악의 조각을 찾아 맞추는 옛 음악 연구·복원 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많은 사람이 앞만 볼 때 저는 뒤를 한번 봤어요.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보는 책이 있듯이 우리 민요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민요의 일면을 정립하려고 합니다. 원대한 꿈이기 때문에 제 선에서 끝을 못 본다고 해도 시작점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만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국악인으로 20년을 넘게 살아온 그는 국악의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슬럼프도 있고 권태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워낙 어릴 적부터 노래를 해서 그런지 삶이 국악 그 자체가 됐어요. 다만 지금 많은 분야를 경험하는 초등학생 제자들을 보면 국악에 치우쳐 있는 제 삶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국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거나 다른 일에 대한 열망을 가진 적은 신기하게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민요와 국악을 사랑해주세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무대인뿐만 아니라 연구자이자 교육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다. 최근에는 국악인들의 활동 범위가 늘었기 때문에 국악에 관심이 있는 예비 국악인에게 시작을 망설이지 말라고 따뜻한 응원의 말을 전했다.
“전 국악을 전공한 것에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100점이에요. 국악 전공을 고민하고 있거나 꿈을 꾸고 있다면 저는 망설이지 말고 배워보기를 권합니다. 요즘은 더군다나 국악 연주자들이 방송인 등 여러 방면으로 많이 진출하기 때문에 많은 길이 열려 있으니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동네에 국악 학원이 있으면 취미로라도 접해보세요.”
국악 공연의 관객석을 가득 메우기 힘든 현실과 인천 국악에 대한 관심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 공연도 있지만, 국악 공연은 객석을 채우기 힘든 상황이에요. 또 성인이 돼서는 인천에서 공연을 많이 못 한 것 같고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악인분들에게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함께 즐겨주시면 우리 국악도 발전하고 독자분들의 문화생활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민요와 국악을 사랑해주세요.”
/글=김현정 기자 kyule@incheonilbo.com
/영상=박서희 기자 joy@incheonilbo.com
/사진제공=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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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가 빠진 것과 같다.
독자는 날카롭게 벼린 기사를 보고 또 읽고 싶어한다.
취재하러 와준 분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건 결례가 아니다.
그런 불편한 비언어적 모습을 날 것으로 담아내는 게 바로 언론사의 역할임을 잊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