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봉 명예교수가 ‘전쟁의 상처와 기억, 분단 이후 인천이 겪은 전란’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인천평화도시 조성사업’으로 진행된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마지막 강좌가 지난 21일 오후 6시 30분 미추홀구 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 꿈’에서 개최됐다.

생명평화포럼(상임대표·정세일)은 이날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제9회 강좌 ‘전쟁의 상처와 기억’과 마지막 강좌인 제10회 ‘분단 이후 인천이 겪은 전란’을 각각 진행했다.

강연을 맡은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제9회 강좌 ‘전쟁의 상처와 기억’에서 6.25 전쟁의 원인과 경과, 상처와 기억, 교훈 등과 함께 남북 분단에 대한 오해와 왜곡된 인식에 관해 설명했다.

이 교수는 먼저 6.25 전쟁이 남북을 분단시켰다는 오해에 대해 “1945년 분단이 된 후, 5년이 지난 뒤 전쟁이 일어났다는 점을 돌이켜 보면, 전쟁으로 인해 분단됐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분단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이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남한에 다량의 미군 핵무기가 있었던 시기에도 보수세력은 종전을 반대해왔다”면서 “그러면서도 이제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종전 선언에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북미 종전 선언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는 이유는 북한 때문이 아니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 때문”이라며 “미국은 그 핑계로 북한의 핵을 문제 삼으며 종전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강연 참가자들이 이재봉 교수의 마지막 강좌를 듣고 있다.

제10회 강좌에서 이 교수는 ‘인천, 분단과 전쟁에서 통일과 평화로’를 통해 “인천은 남북 분단, 6.25 전쟁의 발발, 확대와 가장 관련이 깊은 곳이며, 지금도 남북 분쟁이 그치지 않는 도시”라고 말했다.

그는 “38선을 경계로 남북의 면적을 살펴보면, 북쪽이 더 넓은데도 미국은 38선을 분단선으로 소련에 제안했다”면서 “이는 수도 서울과 함께 서울의 관문이자 우리나라 최대 항구 중 한 곳인 인천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군이 남한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이 인천”이라며 “점령군으로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미군이 미 군정을 세워 남한 통치를 시작하면서 남북 분단이 굳어졌다”고 강조했다.

‘6.25 전쟁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도 인천 옹진반도였고, 맥아더 장군이 38선 이북으로 전선을 확대한 출발점도 인천상륙작전이었다’고 말했다.

6.25 전쟁 이후 벌어진 연평도 포격과 연평해전, 천안함 침몰 등 남북 간 분쟁도 모두 인천 지역에서 발생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인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개성 공단 재개 등을 어느 하나도 지키지 못한 탓에 인천이 여전히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인천과 개성 공단, 해주를 연결한다면 인천은 경제적 성장뿐 아니라 평화와 번영의 도시로 발전하고, 남북의 젊은이들이 번갈아 희생당하는 서해도 평화의 바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 인천생명평화포럼 강연 참가자들이 이재봉 교수의 ‘전쟁의 상처와 기억, 분단 이후 인천이 겪은 전란’에 대한 강의를 들은 뒤 이 교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년 인천시평화도시조성'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인천광역시의 지원 아래 진행해온 ‘인천의 전쟁과 평화로 가는 길’ 시민강좌는 지난 5월 21일 제1,2회 강좌 ‘서양의 첫 침략 병인양요, 미국과 싸우다 신미양요’를 시작으로 5개월간의 여정을 이어왔다.

이 사업을 주관한 인천생명평화포럼은 제3,4강 ‘청일 전쟁과 인천, 러일전쟁과 인천’, 제5,6강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 아시아-태평양 전쟁과 인천’, 제7,8강 ‘한국전쟁과 인천, 평화도시 인천의 미래’에 이어 마지막 강좌인 제9,10강 ‘전쟁의 상처와 기억, 분단 이후 인천이 겪은 전란’을 끝으로 모두 열 차례의 강좌와 평화지도제작을 위한 강화도 현장 답사를 마쳤다.

/글·사진=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