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는 '글은 백성의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글 창제를 시작하고 맺은 임금 세종과 '뜻을 전하기 위해 천 년의 문자'를 만든 신미스님, 새 문자를 만들려는 세종의 뜻을 '마음을 전하기 위해' 품어준 소현왕후 등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최근 이른바 '야민정음' 논란이 있었다. 원래 야구 동호회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서 처음 나온 표기로 특정 음절을 비슷한 모양의 다른 음절로 바꿔 쓰는 방식으로 신조어를 만드는데, 예를 들면 좋은 노래를 '띵곡'(명곡), 강아지를 '댕댕이'(멍멍이)로 표기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또 '롬곡옾눞'(폭풍눈물)처럼 회전하기, '‘뚊'(돌돔)처럼 압축하는 방식 등으로 쓴다.

처음에는 동호회에서만 사용되다 점차 인터넷 커뮤니티로 확산했고 젊은 층의 속어처럼 유행을 타자 TV 광고에 기업 마케팅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코로나19 상황이 2년째 지속하면서 바꾼 일상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용어들을 생산했는데 이른바 '코로나 신조어'다.

마스크는 어딜 가나 착용하지 않으면 출입금지에 교통수단도 이용할 수 없게 된 뒤, 어느새 피부에 닿는 필수품이 되면서 '호모마스크루스'라는 신인류를 탄생시켰다.

또 마스크가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노 마스크족'과 승강이를 벌이는 풍경이 종종 보이고, 포상금을 노리고 음식점 등 시간과 인원 제한 방역수칙 위반사례를 찾아 신고하는 '코파라지'라는 씁쓸한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와 함께 '집콕', '확찐자', '확~진짜' 등의 고전적인 신조어부터 '1일1깡', '식후깡'처럼 2017년 발표된 가수 비의 '깡'이 우스꽝스러운 춤과 노래 가사로 뒤늦게 화제가 되면서 하루에 한번은 '깡 영상'을 봐야한다는 의미의 신조어도 생겨났다.

바야흐로 대선의 시기가 돌아왔다. 여야 대선 경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인터넷의 각종 커뮤니티에는 여야 후보들과 관련한 신조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차피 대통령은 ㅇㅇㅇ'라는 식의 '어대명', '어대낙', '어대윤', '어대홍'은 이미 한두 번은 들어봤을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런 대선후보 관련 신조어는 젊은 층의 관심을 끌어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는 후보에게 득이 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는 후보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이미 휴대폰 등 온라인에서 누구나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상이 보편화하면서 이른바 '초성신조어'로 불리는 'ㅇㅇ'(응응), 'ㅋㅋ'(웃는 모습), 'ㄱㅅ'(감사), 'ㅉㅉ'(쯧쯧) 등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됐다. 이와 함께 원래 단어의 줄임말로 나타내는 '강추'(강력 추천)와 '비추'(추천하지 않음), '팩폭'(팩트 폭행)', '최애'(최고로 사랑함) 등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 빼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시러 펴디 못 할 노미 하니라 내 이를 위하여 어엿삐 녀겨 새로 스물여덟짜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하여 수비니겨 날로 브쓰매 편하긔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훈민정음 서문)

이를 굳이 현재 쓰는 말로 풀이하면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정도일게다.

훈민정음(訓民正音)에 밝힌 것처럼 세종임금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를 통해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과 글을 편하게 쓰게 하려는 마음으로 만든 한글이다.

하지만 이제는 각종 신조어로 대표되는 글과 문자와의 소통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글 파괴와 소통 단절을 부추긴다는 비판과 독특한 방식으로 한글 쓰임을 확장했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9일은 세종 28년인 서기 1446년에 세상에 반포된 훈민정음을 기념하기 위한 '한글날'이다.

해마다 한글날 무렵이면 '우리 말 쓰기'를 강조하지만 세종임금이 500여년 뒤의 '신조어'를 쓰는 백성들을 여전히 어엿비 여길지는 의문이다.

 

/여승철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