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王자…'民' 쓸 생각 못 해봤나
▲ 王(임금 왕)의 가운데 획은 '사람'으로서 길이가 짧고 간격도 차이가 있다. /그림=소헌

“어떤 사람이 지리산 바위 속에서 얻었다며 이상한 글을 바쳤다. 木子(목자)가 돼지를 타고 내려와서 다시 삼한의 강토를 바로잡을 것이다. 아울러 非衣(비의) 走肖(주초) 三奠三邑(삼전삼읍)이라는 글자도 쓰여 있다. 고려 시대에 建木得子(건목득자)라는 설이 있는데, 숨겨지고 알려지지 않더니 이때에 이르러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편).

고전을 읽으며 저절로 韓字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구절이다. 木(목)과 子(자)가 모여 李(리)가 되니까 이성계, 非(비)와 衣(의)를 합치면 裵(배) 배극렴, 走(주)와 肖(초)를 합쳐 趙(조) 조준 그리고 奠(전)과 邑(阝읍)을 합치면 정(鄭)이 되는데, 각각 3쌍(三)이 있으니 정도전·정총·정희계를 뜻한다. 나무를 세워(建木) 아들을 얻으리니(得子), 그들의 명분은 이성계가 배극렴과 조준 그리고 세 정씨와 함께 나라를 세움으로써 조선 개국에 대한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조선왕조를 설계한 정도전은 예언에 머물렀던 이야기를 궁중음악으로 만들어 현실로 끌어냈다. 참, 이성계는 1335년(을해년) 돼지띠다.

1506년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 시대에 자행된 갖가지 그릇된 정치를 쇄신함으로써 새로운 조선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때 등장한 조광조는 사림세력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민본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개혁에 착수함으로써 조선을 이상 사회로 만들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권력의 핵심에 있던 공신 작호가 부당하게 부여된 자들의 공훈을 삭제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훈구파의 반격을 받아 화를 당하게 된다.

장중위왕(掌中爲王) 손바닥 안에서 왕이 되다. 중종 역시 조광조(趙)의 위세가 커지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이를 눈치챈 남곤·홍경주 등은 대궐 후원에 있는 나뭇잎에 꿀을 찍어 走肖爲王(주초위왕-조씨가 왕이 되다)이라는 글자를 써서 벌레가 파먹게 하였다. 그리고는 밤중에 대궐로 들어가 왕에게 고한다. “조광조 무리가 모반을 꾀하려 하옵니다.” 그렇게 해서 조광조는 서른여덟 나이에 개혁이라는 꿈을 펴지도 못한 채 사약을 받게 된다(기묘사화.1519).

 

掌 장 [손바닥 / 솜씨]

①尙(높을 상)은 연기가 하늘을 향하여(向향) 넓게 퍼지는(八) 모습인데, ‘오히려∙더욱이’ 등으로도 응용한다. ②尙(상)이 다른 글자와 만나면 ‘집’을 의미하니, 手(손 수)가 더해짐으로써 손바닥(掌장)으로 집안일을 하거나 장악掌握하다는 뜻이 되었다.

 

王 왕 [임금 / 왕 노릇하다]

①王(왕)의 부수는 玉(옥)으로서 획수가 늘어난 대표적인 글자다. ②王(왕)의 가운데 획은 ‘사람’을 의미하며, 길이가 짧고 간격도 1획 쪽에 더 가깝게 있어야 한다. ③구슬 세 개(三)를 끈으로 꿰고(丨) 묶은(丶) 玉(옥)을 부수로 쓰면 王(옥)이 된다. 王(옥)은 세 획이 같은 길이와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졌다. ④國(국)을 간략하게 囯(국)으로 쓰는데, 国(국)이 바르다.

 

정도전과 조광조의 정치사상을 한 글자로 표방하면 ‘民’이다. 民(민)은 봉건군주제나 민주공화제의 근본을 이루는 대상이어야 한다. 國(국)과 같은 글자 囻(국)을 아는가? 나라(囗)를 이루는 인민(民)을 뜻한다. 며칠 전 손바닥에 떡하니 ‘王’자를 쓰고 나타난 대통령 후보를 보자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쇼맨십을 위해서라도 손바닥에 ‘民’을 쓸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을 테니. 아무튼 손바닥에 ‘王’을 쓰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다. 진~짜왕.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