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힘'을 통해 완벽한 자신과 마주하다
▲ 내면에 지닌 초자연적인 힘의 비밀을 통해 숨겨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델마’의 한 장면.
▲ 내면에 지닌 초자연적인 힘의 비밀을 통해 숨겨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델마’의 한 장면.

이원성의 세상을 초월한 ‘완벽한 나’와의 대면

“네 안에 뭔가가 있어.”

델마의 아버지는 딸에게 약을 건네면서 그녀가 지닌 정체불명의 특별한 힘에 대해 말한다. 델마가 몸과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원하면 그녀의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망각했던 어린 시절의 뼈아픈 가족사를 듣게 된 델마는 친구 아냐의 실종이 자기 때문임을 확신하며 죄책감에 빠진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무릎 꿇고 신께 용서와 구원을 구하던 델마는 돌연 화가 난다. 하느님도 아버지도 왜 자신한테 이러는지 도저히 알 수 없기에...

영화 ‘델마’(2017)는 어릴 적부터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을 내면에 지닌 델마가 그 힘의 비밀을 통해 숨겨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노르웨이 출신의 감독 요아킴 트리에의 작품이다. 감독은 ‘줌 인·줌 아웃’의 부감 촬영기법을 통해 신의 시선을 대변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풍경으로 신비로움을 더하며 한 편의 경이로운 미스터리 영화를 탄생시켰다.

 

‘신비의 힘’의 비밀을 통해 밝혀낸 인간의 진정한 정체성

카메라가 부감으로 점 같은 움직임들을 주시하다가 ‘줌 인(zoom in)’ 하면서 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자 그 움직임이 멈추더니 점점 형상을 드러내며 한 여대생의 모습으로 구체화 된다. 영화는 미시세계 속 양자의 파동성과 입자성을 나타낸 듯한 은유적인 장면으로 오프닝을 열며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간의 관계, 그리고 신과 인간 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여대생 델마는 아냐에 대한 동성애적 감정을 억누르려고 할 때마다 원인 모를 발작에 시달린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악마의 마력 같은 위협적인 힘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냐의 사라짐도, 어릴 적 동생의 죽음도 모두 자신 때문임을 알게 된 델마는 아버지의 지시대로 신경이완제와 기도로 그 힘을 떨쳐내려고 애쓴다. 이 같은 ‘신비의 힘’은 태곳적부터 초자연 현상으로 여겨져 왔으며 시대에 따라 그 주체가 신이나 악마가 되기도 했다. 그 힘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으로 폭발하여 한때 유럽사회를 광기와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힘은 현대과학으로도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채 정신적인 문제로 취급당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E=mc²)에 따르면, 만물은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졌으며 에너지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의 〈사자(死者)의 서(書)〉에서 명계(冥界)로 떠나는 죽은 자는 지하세계를 지나면서 자신이 섬겨온 신들이 사실 자신에게 있는 신비의 작용이었음을 깨달으며 “나는 신을 불러내는 신비다”라고 외친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神)이란 ‘힘이 인격화된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힘의 매개체이자 또 다른 인격화로서 자신을 열어젖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힌두교, 불교, 도교, 기독교 등 많은 종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신과의 합일’이다. 2000년 전 예수의 부활은 인간이 영적인 근원과 다시 결합하여 완전함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분파인 영지주의자들은 영적 자기발견 과정을 통해 거룩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정통파 기독교도들은 예수의 부활을 오해하고 왜곡하여 무한한 신과 유한한 인간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며 교회 밖에서는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황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윤리적 틀에 신도들을 가두며 인간 내면 깊숙이 잠재한 영적인 힘을 금기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델마의 내면의 힘은 억압되고 금기시되면서 파괴적인 힘으로 분출된 것이다. 생명의 힘이 완전히 소멸될 위기에 놓인 델마는 이제 스스로 그 힘의 정체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비밀의 문을 열어젖히고 창조와 파괴의 춤을 추는 ‘완벽한 자신’과 마주한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창세기 1장 구절을 ‘양성 인간의 창조’로 해석한다. 즉, 신은 양성이므로 그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 또한 남성과 여성이 혼재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둘을 하나로 만들 때 (...) 그리고 너희가 남자와 여자를 하나 된 자로 만들어 남자가 남자 되지 아니하고 여자가 여자 되지 아니할 때 (...) 비로소 너희는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도마복음 22장)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_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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