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반지하 방에서 혼자 아기를 낳았다. 버둥거리던 어머니는 생사의 고비 앞에서 가위로 몇번이나 방바닥을 내리찍었다. 그 가위로 아기의 탯줄도 혼자 잘랐다.

피임약 복용의 잘못된 사례로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얼굴이 점점 하얘 지다가 아버지가 되기 전날 집을 나가 그 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는 우울하고 비루하고 실패한 분위기로 인생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농담으로 아기를 키웠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미안해하지도,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아이는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이는 누구를 구원하지도 누구를 이해하는 것도 아닌 열차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2005년 나온 김애란 단편 <달려라, 아비>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김애란 작가 특유의 자족적이며 심란하지만 끝내 발랄한 인생관이 잘 드러난 단편이다.

이 소설이 인천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제작자가 인천문화예술회관, 부평구문화재단, 서구문화재단 세 개 기관이다.

공연장 운영 업무를 주로 하는 인천문화예술회관이 작품을 창작한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지만, 인천의 기초 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제작한다는 최초의 방식이어서 더 의외다.

이번 기획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문화기관이 공동제작·배급할 경우 지원하는 사업에 인천문화예술회관이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예술회관은 창작 연극을 시도해 보기로 하고 공연 유치와 제작 등에 경험이 많은 부평·서구 문화재단에 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공동체가 된 세 기관은 공연 기획사 ㈜스포트라이트를 섭외하고 극본부터 배우 캐스팅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헛스윙밴드,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등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 부평문화재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기관은 최초의 창작공연이라는 점에서 대중적인 소개가 가능한 김애란 소설을 원작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김애란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2002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지금껏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연극 '달려라, 아비'는 소설 속 주인공의 상상 장면을 입체 영상으로 그려내며 전체적으로 독특한 융복합 무대를 연출했다. 어머니 역할엔 배우 정영주를 캐스팅했다.

이번 연극이 10월22일∼23일 초연의 첫 출발을 서구 청라블루노바홀에서 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인천 서부권 대표 공연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새로 지은 청라블루노바홀이 뜻밖의 화재로 지금까지 개관조차 못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거의 공사가 다 된 이 공연장에서 불이 나 지붕 상당 면적을 태웠다. 청라블루노바홀은 개관식과 개관 공연을 한 달 앞두고 모든 계획을 중단하는 신세가 됐다. 지난한 화재 원인 조사와 보수 작업을 2년간 거쳐 이제야 문을 열 수 있게 된 것으로, 연극 '달려라, 아비'가 개관 공연이 될 전망이다.

공동 제작기관들은 연극 '달려라, 아비' 인천 초연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공연할 계획을 짜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해외 공연장 사례처럼 자체 제작 역량을 키워, 극장이 대관 업무의 기능에서 벗어나 창작극을 극장의 브랜드로 삼고 지역 문화의 긍정적 자산으로 거듭날지 기대가 된다.

 

/장지혜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