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 꿈 이룰 주거안정대책 필요
▲ 비록 사람(尸시)이 무릎을 굽히더라도 오래(古) 살려면 집(居거)이 필요하다. /그림=소헌
▲ 비록 사람(尸시)이 무릎을 굽히더라도 오래(古) 살려면 집(居거)이 필요하다. /그림=소헌

조선 시대의 지배계층을 이루었던 양반兩班에는 대감_영감_생원_진사_선달 등 몇 가지 호칭이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직책인 대감은 정이품 이상(국무총리_장관급)을 가리키며, 영감은 종이품과 정삼품(차관_도지사급)에 해당한다. 조선의 과거科擧는 세 단계로 치러졌다. 초시에 합격해야 복시에 응시할 수 있고, 복시에서 합격해야만 비로소 임금이 친히 치르는 전시殿試를 볼 수 있다. 복시의 생원과와 진사과에 합격한 자를 생원과 진사라고 하며, 선달은 전시에 합격했지만 아직은 벼슬을 하지 못한 자를 말한다.

당시에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남으로써 한양의 집값도 폭등했다고 한다. 관리들은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 가족은 남겨두고 본인만 나라에서 제공하는 관가에서 기거했다. 한 번 집을 팔고 사대문 밖을 벗어나면 다시는 그 안에서 집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하니, 그만큼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시세차액을 노리는 돈 많은 사대부가 주택을 사들임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살 집을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조정에서는 주거住居 안정을 위해 도성 인근의 땅을 개발하여 분할하였는데,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집값은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금싸라기 땅인 인사동에 비해 값이 싼 ‘진고개’에는 빈민촌이 형성되었다. 진고개는 회현동과 남산동 일대를 일컫는다. 남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빠지지 않아 항상 질어서 다니기 불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가난한 양반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으니, 그들을 ‘남산골샌님(생원님)’이라고 놀림조로 통칭하였다.

 

남산생원(南山生員) 남산골샌님이 역적 바라듯. 몰락하여 가난하게 사는 남촌마을의 양반들이 반역할 뜻을 품는다는 뜻으로서 불평이 많고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반역하는 뜻을 품기 마련임을 비유한다. 또한 가난한 사람이 엉뚱한 일을 바라는 것을 빗대기도 한다. 운종가(종로 네거리)를 기점으로 북촌에는 권세가들이 살았고, 남촌에는 몰락한 양반들이 살았다. 혹시라도 조정에 역모逆謀라도 일어나면 그 참에 벼슬자리라도 얻게 될까 기대하는 모습이다. 그자들의 목이 잘려나갈 테니까.

 

住 주 [살다 / 사는 집]

①_主(주인 주)는 촛대(王)나 등잔에 켜진 촛불(_)에서 왔다. 고대사회에서 불을 쥔 자가 주체자로서 그들은 노예의 주인이었다. ②사람(_)이 사는 집(住주)에는 불(主)을 켜기 마련이다.

 

居 거 [살다 / 거주하다]

①갑골문에서 尸(시)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주검이나 시체(屍시)로 잘못 쓰고 있다. ②尸(시)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으로 보아 ‘집’으로 사용한다. ③대개 _사람(尸시)은 한 곳에서 오래도록(古고) 살다가(居거) 그곳에서 돌아가기를 원한다.

 

이보다 더 오를 수 있을까? 13년 만에 전국의 집값이 최고로 폭등하였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대통령 취임사에서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文 정권은 실책에 따른 비판을 감당해야 한다. ‘집’은 가장 큰 희망이자 대상이다. 하지만 집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도 먼 꿈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혼인을 하고 가정을 꾸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대선주자들은 저마다 주거안정대책을 내놓지만, 상대 진영에서 보면 그저 황당하고 쓸모없을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라가 망한 다음에 약 이름을 적어주면 무엇하랴(死後藥方文 사후약방문).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