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평택경찰서 한 간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 9개월 만에 최근 순직을 인정받았다. 그의 죽음 둘러싸고 여러 말이 많았지만 주변 동료와 언론이 적극적으로 진실규명에 나선 덕에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았다.

고인은 2006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이후 승진 시험에 연이어 합격하면서 경감까지 승진해 평택경찰서 형사과에 배치받았다.

이후 고인은 검거 실적을 내세우는 직장 상사의 채근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 상사의 채근은 모욕적인 언행으로까지 이어져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평택 경찰 사건처럼 경찰관의 극단적인 선택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직원 간 갈등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치부하기엔 경찰의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서범수 국회의원(국민의힘)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경찰관 사망사고 자료를 보면 2016~2020년까지 10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중 경기도가 21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은 19명이었다. 이 기간 전국에서 10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관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정신건강, 가정문제, 경제문제 등으로 조사됐다. 무엇보다도 직장 내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체 30.2%인 26명이 스트레스에 따른 직장 내 문제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남부청과 북부청의 경우 직장 내 문제의 원인으로 과중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가 꼽혔다.

경기 남·북부청은 시도별 경찰관 1명이 담당하는 인구는 전국 최상위이다. 경기남부지역은 554명, 경기북부지역은 548명이다. 전국 평균인 415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서울은 333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검거 실적을 강요하는 내부 조직 문화 때문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하고 있다.

과중한 업무 속에 검거 실적을 강요하는 조직 문화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 실적을 강요하는 조직 문화는 경찰 승진 인사제도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경찰 승진 제도에는 시험(경정 이하)과 심사(경무관 이하), 근속(경감 이하), 특별승진 등 4가지가 있다.

그러나 밤낮으로 범인을 쫓아다니는 수사 부서 직원은 시험과 심사에 의한 승진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을뿐더러 심사에 들어가는 다면 평가 점수를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서 직원 대부분은 오로지 검거 실적에 따른 특별 승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시험으로 승진한 경찰과 현장에서 잠복근무하면서 빠듯하게 승진한 경찰 간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선 경찰서 강력계 소속 한 경찰관은 “자기 힘으로 승진하려면 시험을 보지 않으면 범인 검거 실적 밖에 없다”며 “현장 잠복근무 등 야근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쉬는 날엔 자연스럽게 도서관과 독서실을 찾아 승진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승진만 생각하면 범인을 쫓는 수사와 형사부서는 기피하게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선 나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건 발생 신고받고 순찰만 하는 경찰만 고위 간부로 남게 될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돈다. 범인 쫓는 고위직 경찰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다고.

현행 인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외부 전문가들은 수사 부서별로 특별승진 인원을 대폭 상향 조정해 자기의 업무를 열심히 한 경찰이 승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2019년 상영된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고 반장(류승룡)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형사과 직원의 모습이다. 강력범죄만 다루다가 승진 못 한 만년 반장인 고 반장은 가정에선 승진 못 하는 무능한 남편이고 조직 내에선 진급에 뒤처진 루저(loser)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경찰의 애환이 더 슬퍼 보인다.

다시 한번 정부 차원에서 경찰 현장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불리한 인사제도를 개선해주기 바란다.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