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청년 시절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 ~1949)는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국모 시해 보복'의 명분으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있던 일본인 스치다를 죽였다. 일본인들이 우리 명성황후를 시해한 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이 사건으로 해주 감영(監營)에 체포된 그는 1896년 8월 인천감리서로 이감됐다. 이때부터 김구와 인천의 인연이 비롯됐다.

중구는 이런 기억을 '청년 김구 역사거리 조성'에 담아내는 데 한창이다. 2018년 12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신포동 문화의 거리 로터리∼성신아파트 앞 200여m 구간이다. 중구는 '현재-백범 김구를 만나다' 등 3가지 테마로 거리를 만드는 중이다. 김구의 첫 수감과 죽음을 각오한 탈출, 투옥 체험 공간 등으로 꾸민다.

이처럼 무슨 거리는 생전에 큰 업적을 남긴 이들을 기려 세우는 게 통례다. 지금은 타계하고 없는 인물을 추모하며 잊지 말자는 뜻이리라. 중구엔 이미 '고유섭 길'이 있다. 한국 미학의 선구자인 그의 탄생지(용동) 일대를 2013년 '도로명 주소 제도' 개편 때 부여했다. 그런데 현재 살아 있는 인물을 접목한 길을 만든다고 하니, 이채롭기만 하다. 인천 출신 가수 송창식의 음악과 인생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중구는 지난 16일 송창식과 그의 출생지 주변을 '송창식 거리'로 조성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송창식이 태어나고 자란 신흥·답동 인근을 경험·추억의 장소로 만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지역이 문화예술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침체된 원도심 활성화에 도움을 주리란 게 중구의 기대치다. 중구는 그의 대표곡을 이용한 벽화·조형물·쉼터조성 등도 꾸미기로 했다.

송창식은 1970년대 우리나라에 포크 열풍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가수다. '담배가게 아가씨', '고래사냥', '우리는', '토함산' 등 수많은 자작 히트곡을 만들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는 신흥동에서 태어나 신흥초교와 인천중학교를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평소 “내 음악엔 언제나 인천이 들어가 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하다.”고 할 정도로 인천을 우러른다. 인천이 음악적 모태란 얘기다.

대한민국 최고 가수 반열에 오른 송창식. 독창적 음악 세계를 창안했다고 자타가 공인한다. 그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거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구민 자부심을 높이고 관광자원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런 한켠으론 걱정도 든다. 인물에 대한 고찰은 제쳐둔 채 상업과 관광 등의 목적으로만 흐를까봐서이다. 아무튼 송창식이 한국과 인천 대중음악사에 끼친 영향과 조망 등을 함께 아우른 거리로 탄생하길 고대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