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벨소리에서부터 자동차 경적소리, 하다못해 붉은색 신호등까지 친근하게 느껴질 만큼 월드컵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또다시 영화도시 부천이 수상하다.
 거리나 사람들은 그대로인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다. 월드컵 때 닭벼슬머리로 뭇여성들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던 잉글랜드 축구스타 베컴이 아직 부천에 남아있다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충무로의 호러퀸""이 머지않아 부천을 접수할 거라는 납량특집용 우스갯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솔깃한 얘기의 중심에는 항상 영화라는 공통분모가 자리하고 있다. 부천이 지금 온통 영화세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 여섯번째로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2002)는 부산, 전주와 함께 국내 3대 지역영화제로 자리를 잡은 국제적인 영화잔치.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말 자원활동가 접수마감결과 200명 선발에 808명이 몰릴 만큼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는 인기도를 실감하고 있다. 이는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해 2대1의 경쟁률에 비하면 두배로 늘어난 수치.
 11일부터 20일까지 사랑, 환상, 모험이라는 컨셉으로 37개국에서 내놓은 160여편의 영화가 선보이는 올해 영화제는 양적인 팽창보다는 내용면에서 내실있는 작품들을 선별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심각하고 학구적인 내용의 작품보다는 흥행만을 좇는 상업영화의 조류에도 휩쓸리지 않고 관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대안영화들을 다채롭게 준비했다.
 여기에 감독 위주의 미니영화제로 통하는 회고전과 특별전, 그리고 지난해 태국영화의 강인한 인상처럼 아시아권뿐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의 영화적 취향까지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돼 있다.
 특히 올해는 개막작부터가 범상치 않다. 월드컵 열기를 의식한 듯 지난 4월 영국에서 개봉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축구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Bend It Like Beckham)이 개막작으로 선정됐기 때문.
 지난해 선보인 `레퀴엠"" 등 파격적인 영상을 강조했던 기존 개막작과는 달리 대중적인 측면을 고려해 선정된 이 영화는 베컴의 일대기를 그리거나 그가 출연하는 영화쯤으로 생각하면 큰 실수다.
 베컴의 팬이자 축구선수를 꿈꾸는 인도계 제스와 줄스라는 18살짜리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물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부천이 드러난 것 외에 속으로 뭔가 특별한 게 있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폐막작에는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 빅토르 에리스(스페인), 베르너 헤어조크, 빔 벤더스(이상 독일), 짐 자무시, 스파이크 리(이상 미국), 첸 카이거(중국) 등 세계적인 거장 7명이 모여 만든 영화 `텐 미니츠-트럼펫""(Ten Minutes Older:The Trumpet)과 `한국의 히치콕""으로 불리는 안병기 감독의 영화 `폰""(The Phone)이 선정돼 국내 첫선을 보이게 된다.
 특히 폐막작 `폰""의 주연배우이자 `가위""를 비롯해 많은 국내 호러물에 출연했던 `호러퀸"" 하지원은 강수연, 추상미, 진희경, 배두나, 장진영에 이어 6대 페스티벌 레이디로 뽑혀 영화제를 대표하는 홍보사절로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천영화제의 백미는 특별전과 회고전.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전주영화제에서 `오디션""과 지난해 `비지터Q""로 영화인들을 놀라게 한 미이케 다카시 특별전이다.
 무국적의 이미지와 일본의 붕괴를 기괴한 영상으로 담아내는 다카시 감독은 무려 7편의 작품을 이번 영화제에 선보이는데 이중에는 김지운 감독의 우리 영화 `조용한 가족""을 일본식으로 리메이크한 `카타쿠리가의 행복""이 눈길을 끈다. 이렇듯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나설 수 있다는 게 올해 부천이 갖는 또다른 매력이다.
 이와 함께 `반지의 제왕""시리즈로 알려진 피터 잭슨 감독의 특별전은 섬뜩하면서도 신비한 유머가 있는 환상의 영화세상으로 팬들을 안내할 예정이다.
 또 실험적인 접근으로 언더그라운드 섹스무비로 분류되는 블루무비 특별전을 비롯해 쌍둥이 감독인 쿠차형제의 언더그라운드 영화도 소개된다. 이와 함께 회고전을 통해서 방대한 스케일의 독일 거장감독으로 알려진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세계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본다.
 부천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분인 부천초이스 장편부문에는 우리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와 `검은 물밑에서"" `악마의 꼬리"" `도니다코"" `디 아이"" `파우스트 5.0"" `우리 오빠는 뱀파이어"" `이도공간"" `사마귀 부인"" 등 9편의 작품이 출품돼 각국을 대표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번 영화제가 갖는 또하나의 장점은 오전 11시 조조상영작을 `깨비타임""이라는 이름으로 할인관람토록 하고 놀이방 운영과 네티즌 홍보를 강화하는 등 이 기간 부천을 찾는 영화팬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지역행사 때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부천을 부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밖에도 부천영화제에만 있는 젊음의 해방구 `시네락나이트""와 각종 심야상영, 재미와 깊이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영화토론장인 `메가토크"" 등 영화와 마니아들의 신명나는 놀이판이 열흘간의 부천을 뜨겁게 달구어 놓을 예정이다.
〈이원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