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따로 나 따로' 학자 즐비…언행일치 실학자 '귀감'
▲ <북학의>는 내∙외 편으로 2권 1책이다. 외 편은 전(田)∙분(糞)∙상과(桑菓)∙농잠총론(農蠶總論)∙과거론(科擧論)∙북학변(北學辨)∙관론(官論)∙녹제(祿制)∙재부론(財賦論)∙통강남절강상박의(通江南浙江商舶議)∙병론(兵論)∙장론(葬論)∙존주론(尊周論)∙오행골진지의(五行汨陳之義)∙번지허행(樊遲許行)∙기천영명본어역농(祈天永命本於力農)∙재부론(財賦論) 등 17항목의 논설로 상공업과 농경 생활을 다루었다. 핵심은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농경 기술·농업 경영을 개선함으로써 생산력을 발전시켜 백성들의 부를 증대시키자는 것이다. 사진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가람문고본 <북학의> 하권 표지.
▲ <북학의>는 내∙외 편으로 2권 1책이다. 외 편은 전(田)∙분(糞)∙상과(桑菓)∙농잠총론(農蠶總論)∙과거론(科擧論)∙북학변(北學辨)∙관론(官論)∙녹제(祿制)∙재부론(財賦論)∙통강남절강상박의(通江南浙江商舶議)∙병론(兵論)∙장론(葬論)∙존주론(尊周論)∙오행골진지의(五行汨陳之義)∙번지허행(樊遲許行)∙기천영명본어역농(祈天永命本於力農)∙재부론(財賦論) 등 17항목의 논설로 상공업과 농경 생활을 다루었다. 핵심은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농경 기술·농업 경영을 개선함으로써 생산력을 발전시켜 백성들의 부를 증대시키자는 것이다. 사진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가람문고본 <북학의> 하권 표지.

“국민 아픔 해결하는 진짜 약 되는 정치 실현하겠다” 한 신문 정치면 머리기사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의 출마변이란다. 저쪽의 선거공약은 '가짜 약'이고 내가 '진짜 약'이라는 의미다. 같은 당인데도 둘로 나뉘어 국민들에게 '진짜 약'을 복용시키겠다는데, 이 '약(藥)'이란 말이 이중적으로 쓰임을 아는지 묻고 싶다. 생뚱맞은 정치인의 약 타령을 들으며 '파르마콘(Pharmakon)-적(的) 인간군상'이란 말이 생각이 난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글(혹은 말로 치환해도 무방할 듯)을 '파르마콘'이라 정의하였다. 파르마콘은 치유하는 약이기도 하지만 고약한 독이란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는 용어이다. 아마도 글(말)은 진정성 있는 듯하지만, 글쓴 이(말하는 이)의 행동은 거짓임을 간파한 플라톤이 이 파르마콘을 끌어와 글(말)이라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마키아벨리즘을 외대는 이 땅의 정치인들 언행이야 워낙 불일치하니 그렇다 치지만(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심을 굳게 믿는다), 학자들조차도 '어떻게 글은 저렇게 고상하고 멋진데 행동은 이렇게 치졸하고 저급할까?'하는 경우를 다반사로 본다. '글 따로 나 따로'인 '파르마콘-적 인간군상'이 즐비한 이 땅이다. 그래 글과 삶이 여일(如一)한 실학자들의 글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이다. 선생은 <북학의>를 2권 1책으로 만들었다. 내·외편이 각 1권으로 구성되었는데, <북학의> '자서'부터 읽어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최치원과 조헌의 인격을 존경하여 비록 세대는 다르지만 그분들의 뒤를 따르고 싶었다.…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깨우치고 훌륭한 것을 보면 직접 실천하려 했다. 또한 중국 제도를 이용하여 오랑캐 같은 풍습을 변화시키려고 애썼다. 압록강 동쪽에서 천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이 조그마한 모퉁이를 변화시켜서 중국과 같은 문명에 이르게 하려던 사람은 오직 이 둘뿐이었다.-무술년(1778년) 9월, 비 오는 그믐날, 통진 시골집에서 위항도인 박제가 씀”

이 때 선생의 나이 겨우 스물아홉이었다. 선생이 따르고 싶었다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은 신라 말기의 대표적 지식인이다. 당나라 '황소난' 때 지은 '토황소격문'은 명문으로 유명하다. 신라에 돌아와 개혁안인 '시무책'을 제시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은 데다 6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에 좌절하여 유랑하였다. 중봉(重峰) 조헌(趙憲, 1544-1592)은 강직한 성품으로 도끼를 지니고 가 상소를 올린 이다.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였으니 자신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도끼로 목을 치라는 강개한 사내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 1600명을 이끌고 청주성을 수복하였고 이후 금산 전투에서 의병 700명과 함께 왜군에 대항하다 장렬히 전사한 이다. 어릴 때부터 이 최치원과 조헌을 흠모했다 하니 선생의 기개 또한 예사롭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

이제 '내 편'부터 본다. 내 편은 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구와 시설에 대한 개혁론을 제시해 현실 문화와 경제생활 전반을 개선하려 하였다. 간략하게 몇 항목만 보자.

“벽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침에 저녁 일을 걱정하지 않아서 수많은 기술이 황폐해지고 날마다 하는 일도 소란스럽기만 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에게는 정해진 뜻이 없고 나라에는 일정한 법이 없다. 그 원인은 모든 일을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는 데 있다. 그로 인해 생기는 해로움을 알지 못하면 백성이 궁핍해지고 재물도 고갈된다. 따라서 나라가 나라꼴이 되지 못할 뿐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고질병인 임시방편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이미 연재한 우하영 선생도, 연암도 지적하였다. 특히 연암은 인순고식(因循姑息: 낡은 관습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장의 편안함만을 취함) 구차미봉(苟且彌縫: 일이 잘못된 것을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구차스럽게 꾸며 맞춤), 이 여덟 자로부터 모든 게 잘못되었다며, 병풍에 써 '저러하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하였다.

“목축: 목축은 나라의 큰 정사다. 농사일은 소를 기르는 데 있고 군사일은 말을 훈련시키는 데 있으며 푸줏간 일은 돼지, 양, 거위, 오리를 치는 데 있다.

소: 우리나라에서는 날마다 소 500마리가 죽는다.”

선생은 생업이 오로지 농사인데 날마다 소 500마리를 도축한다고 지적한다. 저 시절 그 소고기를 백성들이 먹지는 못할 터, 호의호식하는 양반네들이 눈에 선하다.

“시정: 재물은 우물과 같다.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물이 가득 차지만 길어내지 않으면 물이 말라버린다. 마찬가지로 비단옷을 입지 않으므로 비단을 짜는 사람이 없고 그 결과 여성 공업이 쇠퇴한다.”

이른바 선생 특유의 '사치론(奢侈論)'이다. 지금도 절약을 미풍양속으로 여기기에 선생의 생각 폭이 놀라울 뿐이다. 아래 '상고'와 '고동서화'는 선생이 상세히 기록해 놓았기에 따로 부연치 않는다. 독자 제위께서 삼가 해석하여 읽으시기 바란다.

“상고: 우리나라의 풍속은 겉치레만 알고 뒤돌아보며 꺼리는 일이 너무 많다. 사대부는 놀고먹으면서 하는 일이라곤 없다. 사대부인데 가난하다고 들에서 농사를 지으면 알아주는 자 없고, 짧은 바지를 입고 대나무 껍질로 만든 갓을 쓰고 시장에서 물건을 매매하거나 자와 먹통 또는 칼과 끌을 가지고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하면, 그를 부끄러워하고 우습게 여기면서 혼삿길을 끊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므로 집에 비록 돈 한 푼 없는 자라도 높다란 갓에 넓은 소매가 달린 옷으로 나라 안에서 어슬렁거리며 큰소리만 한다. 그러면 그들이 입는 옷이며 먹는 양식은 어디서 나오는가? 권력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청탁하는 버릇이 생기고 요행을 바라는 문이 열렸으니 시장 장사치도 그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더럽다 한다. 그러니 중국 사람이 장사하는 것보다 못함이 분명하다.”

언뜻 보면 자질구레한 일상을 적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각 항목 항목이 당시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새겨보아야 한다. 그만큼 선생은 시대상을 면밀히 주시하고 이를 책으로 엮었음을 알 수 있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