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권에선 청년 정치인들의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케케묵은 지역·구태 정치와 기성세대를 겨냥했다. 그 징후가 돌풍이 아닌 듯해 심상찮다. 급기야 며칠 새 '개헌론'으로까지 번졌다. 당적과 상관없이 '40세 이상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건 불공정하다'며 헌법을 고쳐 대선 출마 나이 제한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세대교체 바람은 민심을 등에 업었다. 청년은 지금의 '올드 정치'에 신물을 느낀다. 청년은 1987년 6월 항쟁 중심에 섰던, 지금 정치의 주류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이미 기득권화했다고 믿는다. 취업이 그렇고 부동산이 그렇고, 뭐 하나 청년을 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노동현장에서 힘없이 쓰러져가는 청년을 하대하는 정치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작심한 듯하다.

청년 이선호씨. 지난 4월22일 평범한 대학생인 20대 이선호씨가 평택항에서 무거운 쇳덩이에 짓눌리면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선호씨는 평택항에서 세관 검수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였다. 사고 당일 원청의 지시로 컨테이너 관련 일을 돕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학비를 벌기 위해 나섰던 길이었다.

5년 전인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 사고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가 숨졌지만 바뀐 건 없었다. 그 후로 2년여가 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김용균씨가 숨지자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한다면서 그제야 정치권이 움직였다. 또 2019년 4월 수원의 한 건설현장에서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김태규씨가 5층 높이에서 추락사했고 다시 2년 만에 이선호씨가 숨졌지만, 그동안 나아진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먼,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 남았다. 짧지 않았던 그 5년 동안 꽃을 피우지 못한 숱한 청년이 쓰러져갔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18~29세 청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42명으로 한 달 3.5명에 달했다.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한 경우를 고려하면 매주 1명의 청년이 목숨을 잃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지난 1월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시민의 긴 요구와 산재 피해 유가족이 한 달여 간 단식농성을 감행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로는 너무나 형편없다.

정부와 여당의 손에 의해 적용 범위와 처벌 대상, 처벌 수위 등 많은 부분에서 의미가 퇴색됐다. '중대재해기업' 처벌이 아닌 '보호'법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법안 제정 3일 뒤, 한 노동자가 플라스틱 분쇄기에 몸이 말려들어 사망했다. 2인 1조 수칙이 무시됐고, 과거에도 안전수칙 미이행으로 적발된 기업이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전체 사업장의 79.8%가 5인 미만 사업장이다. 또한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법 공포 후 3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전체 사업장 중 98.8%를 차지하며 산재 사고의 85%가 발생한다. 결국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청년을 포함한 중대재해를 입는 대다수의 노동자를 지키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애초 피해 유가족이 발의한 법안의 취지는 하청기업뿐 아니라 원청과 사업주까지 포함해 강력한 처벌로 산재를 예방하는 것이었다. 특히 법에서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 실제 경영책임자가 안전담당관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할 여지를 남겼다.

그러니 원청업체 대표가 김태규 청년 노동자 사고 678일만인 지난 2월에야, 그것도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사과하는 부도덕한 행태는 어찌보면 이상한 것도 아닌 듯싶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이선호씨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며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선호씨 부친은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있어야겠지만, 제발 이제는 이런 사고를 끝내야 한다”며 가슴을 쳤다.

“같은 죽음. 다른 관심. 300㎏ 쇳덩이에 깔려, 눈 감지 못한 청년 노동자. (중략) 평택항에서 일하다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 죽음마저 외면당한 서럽고 비참한 최후. 노동자의 죽음은 너무 흔하게 널려서일까.”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로 유명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이선호씨를 추모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김 위원의 글은 '올드 정치'를 향한 청년의 분노를 가늠케 한다.

 

/정재석 경기본사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