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난훈 관리' 가득하면 비답도 소용 없어
▲ 겸재(謙齎) 정선(鄭敾, 1676~1759)의 '어초문답도(樵問答圖)'. (비단에 채색, 23.5×33㎝,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속세의 욕심과 절연하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인 어부와 초부를 그렸다.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천지만물부터 세상 사는 이치를 넘나든다. '어초문답도'는 17·18세기 일군의 실학자들이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시대에 그려졌다. 우하영 선생 역시 저 은자들 중 한 분이다.
▲ 겸재(謙齎) 정선(鄭敾, 1676~1759)의 '어초문답도(樵問答圖)'. (비단에 채색, 23.5×33㎝,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속세의 욕심과 절연하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인 어부와 초부를 그렸다.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천지만물부터 세상 사는 이치를 넘나든다. '어초문답도'는 17·18세기 일군의 실학자들이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시대에 그려졌다. 우하영 선생 역시 저 은자들 중 한 분이다.

'난훈(難訓, 가르칠 수 없다)'이란 말이 생각났다. 몸은 호랑이와 비슷한데 호랑이보다 크다. 멧돼지 어금니에 꼬리는 5m나 되는 악수(惡獸)이다. 바로 사흉(四凶, 큰 개의 모습을 한 혼돈, 눈이 겨드랑이에 있는 도철, 날개가 달린 호랑이 궁기와 도올) 중 하나인 도올(檮杌)이란 짐승이다. 이 도올은 전욱(顓頊)이라는 고대 전설 속 황제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허울만 좋은 하눌타리일 뿐이다. 오로지 악행만 일삼고 싸움질을 하면 물러나는 법이 없다. 또 거만하고 완고하여 남들의 의견도 전혀 듣지 않아 난훈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수십 년 동안 그 난리를 치고 만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호 사건'이라 내세운 걸 보며 든 생각이다. 제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주고 백성들이 열심히 가르쳐도 도저히 제 버릇을 못 버리는 '난훈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요,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못 된다는 말이 정녕일시 분명하다.

우하영 선생이 목숨을 걸고 올린 <천일록> 또한 저런 난훈들에게 경 읽기로 그쳤다. 이제 선생에 대한 마지막 회로 제6책을 읽는다.

제6책은 '잡록' 상·'잡록' 하·'병진사월응지소'·'갑자이월응지소'·'어초문답'·'취석실주인옹자서'로 구성되었다. '잡록' 상에서 선생은 “백성들의 윤리를 바로잡고 세상을 교화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잡록'하는 “보고 들을 것을 기록”하였다고 하는데 대부분 기이한 사적이다. '병진사월응지소'(丙辰四月應旨疏)는 1796년에 응지상소한 것이다. 당시 폐단의 실상, 그 폐단이 생기게 된 근본 이유, 구체적인 대응책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갑자이월응지소'(甲子二月應旨疏)는 1804년에 응지상소한 것으로, “국왕 덕목에 관한 조목 10개 항”과 당시 “사회 폐단에 대한 조목 10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통령과 각료, 혹은 각 기업이나 단체를 이끄는 리더, 혹은 이들에 준하는 행동을 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국왕 덕목에 관한 조목 10개 항”만 정리하면 이렇다.

1. 마음: 마음이 공정하도록 힘써라. 2. 기미: 바깥 기미(조정)와 안 기미(마음)가 만날 때 밝은 이치가 나타난다. 3. 지인용(智仁勇): 지혜로워야 사람을 알아보고 인자해야 백성들을 보호하며 용맹해야만 제압할 수 있다. 4. 인재를 찾아라: 인재를 구하는 것은 성의에 달려 있고 사람을 임명함은 공정함에 달려 있다. 5.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라: 이극(李克) '오시법'(五視法)을 사용하라. 오시법은 사람을 보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①그가 평소에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보라. ②부자라면 누구에게 자신의 부를 베푸는지 보라. ③높은 지위에 있다면 누구를 천거하는지 보라. ④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그가 하지 않는 일을 보라. ⑤가난하다면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보라. 6. 풍속의 변화를 꾀하라. 7. 상벌을 밝혀 아랫사람을 주의시켜라: 신상필벌을 정확히 하라. 8. 덕과 법을 다스리는 방도로 삼아라: 덕과 법은 백성들을 부리는 도구다. 그렇지만 덕교를 우선시하고 형법을 뒤로하라. 9. 조목을 세워 가르치는 방도로 삼아라: 자기 직업에 충실하도록 독려하라는 말이다. 10. 마음을 지켜 만사 근본으로 삼아라: 마음을 잡도리하라는 말이다. 선생은 “마음을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를 단단히 하고 치밀하게 내리게 하면 비바람에 쓰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배에 비유하자면 닻을 내릴 때 단단하고 깊게 하면 파도에 흔들리지 않으니 마음을 잡고 지키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하였다.

'어초문답'(漁樵問答)은 어부와 나무꾼이 나누는 대화로 그 속에 선생의 사상이 담겨 있다. 글줄을 따라가며 선생의 말을 경청해보자.

▲시대에 따라 환경도 변한다. 따라서 정치 방법도 다르다. ▲백성을 양육하는 게 먼저이고 가르치는 게 다음이다. ▲근면하고 검소하라. ▲수령의 고과에 백성들의 근면을 반영하자. ▲자기 분수를 넘는 것은 모두 사치다. ▲부자는 음식이 넘치고 가난한 자들도 옷은 사치스럽다. 사치를 부리니 물가가 뛴다. ▲폐단 없는 정치는 없고 구제할 수 없는 폐단도 없다. 폐단이 생기는 것은 애초에 정책이 느슨해졌던 탓이고 폐단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정책을 바로잡는 것뿐이다. 오늘날은 폐단과 근심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이 없었을 뿐이니 만일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는다면 구제 못 할 것도 없다. 하늘에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부여받아 변치 않는 게 있다면 마음이다. ▲엄금할 때 형법으로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세상을 규범 있게 만들겠는가? 오늘날 급선무는 오로지 근본에 힘쓰고 사치를 금하는 데 있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여 꺼리는 정사를 펼친 다음에야 왕의 교화가 시행된다. ▲쓸데없이 하은주(이상향) 시대 이야기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폐단을 고쳐나가서 '소강 세상'을 이루는 편이 낫다.

이로써 <천일록>의 대강을 살폈다. 선생은 두 번 상소를 올렸고, 임금들은 두 번 비답(批答, 상소에 대한 임금의 대답)을 내렸다. 선생의 글은 당대의 진단서였고 사회적 병폐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전이었다. 정조는 검토하고 명령도 내렸지만, '난훈 관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답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순조는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조선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왕도 백성도 아닌 '난훈 관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상소와 왕의 비답은 조선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였다.

이제 선생의 상소와 왕의 비답은 슬픈 외침으로 남아 이 시절을 사는 우리에게 도착했다. 일개 서생 우하영, 그러나 “내 일념은 동포를 모두 구제하는 데 있었을 뿐”이라 손등에 푸른 정맥이 솟도록 쓴 <천일록> 맨 뒤, '취석실주인옹자서'를 다시 읽어 본다.

“내 일념은 동포를 모두 구제하는 데 있었을 뿐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볼 때마다 가난한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책을 고민하였고 길에서 사람을 만날 때도 백성들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래서 전국 물건 값이 언제 올랐다가 언제 떨어지는지, 궁벽한 시골에 이르기까지 그곳 요역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 수 있다.”

저 시절 저러한 이가 이 시절이라고 없겠는가. 주위를 둘러 이러한 이를 찾아 국정을 경영토록 한다면 어찌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지지 않겠는가?

다음 회부터는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북학의>를 읽어 본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