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칭우 경제부장

세계 최대 전사상거래 업체 미국 '아마존'이 SK텔레콤의 자회사인 '11번가'와 손잡고 한국시장에 진출한다. SKT은 지난 16일 아마존과 11번가의 지분 참여 약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아마존이 11번가의 기업공개(IPO) 등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 성과를 비롯한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될 경우 신주인수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아마존이 내건 구체적인 조건과 투자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존 때문에 미국에서 백화점, 쇼핑몰 등 과거의 업계 제왕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는 건 이제 뉴스가 되지 않고 한국에서도 대형 할인마트는 추가 출점 없이 매장 폐쇄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 뉴스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이커머스 거래액은 2019년 1030억달러(114조원)로 세계 4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몇년 간 10%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고속 성장 중이다. 뛰어난 통신 및 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올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성장세가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가총액이 2000조원이 넘는 아마존의 한국진출은 쿠팡의 기업가치 10조보다는 200배,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보다 6배, 우리나라 전체 시가총액보다 많은 공룡의 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네이버쇼핑 12%, 쿠팡 10%, 이베이코리아 10% 등을 점유하며 톱 3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11번가는 6% 수준으로 4위에 위치해 있다. 업계는 아마존이 11번가의 노하우를 흡수해 국내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경우 톱 3 진입은 물론 이커머스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당장은 빠른 속도와 완벽한 품질을 요구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희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력으로 국내 소비자들은 별다른 해외 구매대행이나 직구입 절차 없이 11번가를 통해 아마존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11번가가 아마존의 일부 상품을 국내 물류센터에 보관하고 있다가 주문 시 즉각 배송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는 이전보다 손쉽게 해외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그동안 해외 사이트에서 겪었던 언어, 배송 주소, 시간, 관세 및 부가세, 환불 등 기존 직구입 절차의 불편함이 상당 부분 해소될 예정이다.

다만 이 같은 예상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다소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 경쟁력인 물류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비용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에서다. 로켓배송으로 수년째 풀필먼트 서비스를 구축해온 아마존의 국내 시장 최대 라이벌인 쿠팡은 현재 전국에 170여개의 물류센터를 구축•운영하고 있다. 수조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관련 업계와의 치열한 경쟁, 관계 당국과의 치열한 규제싸움을 벌여 이뤄낸 결과다.

이 같은 촘촘한 인프라와 빠른 배송 등 운영 노하우는 손쉽게 뛰어넘을 수준이 아닌 것이다. 또 탄탄한 오프라인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롯데, 신세계 등 유통 공룡들도 지속적 투자를 이어가며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 속 '출혈 경쟁'이 예고돼 있는 가운데, 이제 막 연합을 시작한 아마존과 11번가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 나갈 것이라는 예상은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유통업계 세계 최대 공룡인 월마트를 비롯한 한국시장 진출에 실패했던 여러 공룡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세계 최고의 컨슈머 집단인 대한민국 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세계 이커머스 시장의 양대 공룡인 미국 아마존과 중국 알리바마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 못한 주요 국가는 한국과 러시아 정도다. 아마존의 한국진출이 단순히 국내 이커머스 시장만 노린 것이 아니라 알리바마와 벌이고 있는 세계 이커머스 대전의 일환으로 한국을 성장세에 있는 동남아 이커머스 시장의 '전초기지'로 활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며 시장 장악력을 확보함과 함께, 동남아 이커머스 시장과의 접근성을 활용해 물류기지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항공화물 세계 3위인 인천국제공항과 미국과의 직거래 노선이 1개에 불과하나 국내 동남아 라인 상당수를 갖춘 인천항의 입장에서는 '물류적 관점'에서 아마존의 한국진출에 여러모로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