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주간

강화를 관통하는 48번 국도의 말미, 교동대교를 지나 교동도에 들어섰다. 교동평야에 가을이 왔다. 어쩌다 강풍에 파도처럼 누운 벼도 익는다. 지붕을 날리고 초석을 잠기게 했던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이날도 온종일 맑다. 차창은 혼자 마시는 가을 하늘을 빠르게 버리고 담는다. '힐링'이 교동으로 가는 길에 가득 찼다.

9•19 평양공동선언 2년이 지났다. 남북 두 정상 간의 이산가족 상시면회소 설치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망향대를 향한 몇몇 차량들이 잠시 숨을 고른다. 실향의 아픔을 민간인통제구역 통행증에 묻는다. 분단 민족의 비애를 심은 지 벌써 70년이다. 북쪽 50번 국도를 타고 연백평야를 달려 내려온 실향민의 가족들도 저만치 비봉산 봉우리에 있을까.

둥지를 비우는 제비도 남과 북을 오간다. 둥지 지붕을 열어놓고 다시 올 날을 기약한다. 그래서인가. 교동 실향민들은 문마저 걸어 잠그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북의 가족들이 성큼 들어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무릇 인간의 본질은 나고 자란 고향에 있다. 떠나서 고달프고 슬플수록 고향의 위로가 간절하다. 그곳에 나를 감싼 자연과 가족 친지가 있다. 그래서 교동은 제비의 마을이 됐다. 제비는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위로할 방책이었다. 교동은 삼짇날 처마 밑에 찾아오는 제비마저 보기 힘들다는 푸념 속에 남북 경색의 정치 환경을 아쉬워하는 민통선 북단 섬마을이다. 전통 가옥이 쇠퇴하고 생태 환경이 변했다. 그래도 우리와 가장 친밀한 여름철새 제비는 '푸른 하늘을 다 구경하고' 둥지로 회귀한다. 분단 민족이 지닌 귀소성이 제비였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럼에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적 문제이기 전에 체제 유지를 위한 정치적 이슈가 항상 앞을 가렸다. 지난 1957년 국제적십자위원회를 통해 남북이 이산가족 생사 확인을 주고받은 후 몇 년이 흘렀는가. 2000년 김대중 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에 따라 6회의 대면상봉 등 본격적인 이산가족 만남을 가졌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면 10회, 화상 7회, 영상(편지) 1회 등 활발한 실향민 교류가 이어졌다. 당시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대북지원이 크게 늘어 보상적 지원이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지난해 말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생존 상봉 신청자는 5만2730명, 사망자는 8만640명으로 전체의 60%를 상회했다. 이산 생존자가 점차 세상을 떠나는 가운데 한 맺힌 한가위를 다시 맞이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문재인 정부 출범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문 정부 들어 한 번에 그친 이산가족 상봉은 얼마나 남북관계가 경색일로를 달리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한가위를 앞둔 또 한번의 가을이 아쉽다. 올해도 이산가족 추석 상봉의 희망은 사라졌다.

교동 대룡시장은 황해도 연백시장을 추억으로 간직한 피난민들이 삶을 지탱하던 현장이다. 이제 주말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희화된 여행지가 됐다. 코로나를 예방한다는 백신(고무신)도 팔고, '간첩신고는 113•112'라는 옛 표어도 눈에 띈다. 잠시 과거를 불러내는 추억여행의 장소다. 드넓은 교동평야를 품은 난정저수지에 해가 넘는다. 철책선 너머로 북한 연백평야가 지척이다. 서로 품앗이하던 십리도 안되는 마을들이 분단의 상처를 안고 무던히도 살아왔다. 한가위 둥근 달이 저수지에 비추이면 고향 부모님과 형제들의 안녕을 바랄 뿐이다.

남북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지 않는 국민이 있을까? 본보는 부설 평화연구원 특집(격주 보도)에 '교동 망향대에서'라는 칼럼 문패를 달았다. 분단 접경지역을 둔 인천•경기 그리고 대한민국의 남북통일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SNS서 “9•19 남북합의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020 한반도국제평화포럼'에서 “평화는 노력 없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이 주도하는 평화시대'는 진전된 것이 없다. 남북 두 정상은 있으되 국민이 보이지 않았다. 6•15 공동선언, 4•27 판문점선언 등도 유효하다. 정부는 통일문제에 이념과 사상 수준의 수사(修辭)를 앞세우기 전에 구체적인 실체를 성취해야 한다. 민족•자주적 소신으로 남북 교류와 협력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교동은 황해도 해주를 잇는 전진기지다. 평화와 남북통일의 씨앗을 품은 곳이다. 실향의 교동평야에 서서 강 건너 연백을 보라. 거리는 지척, 분단은 길다. 단장의 아픔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