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 인천시의료원장

코로나 사태 와중에 국민 모두를 불안하게 하던 의사들의 집단휴진사태가 진정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20년 전의 의사집단휴진은 처방약에 대한 경제적 이유가 주였지만, 이번 사태의 표면적 이유는 의사 수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반대이다. 하지만 전체 의사 수 3%도 안되는 4000명을 늘리고 학생 수 49명에 불과한 공공의대 설립에 이토록 강력히 반발하다니? 더욱이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의료공공성 확대를 목표라 주장하니 국민들의 아리송함은 극에 달했다. 해답은 우리 의료가 갖고 있는 문제에 있다.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은 한 환자의 치료기를 구성해보았다.

상황1. 아득한 마음도 잠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도무지 모르겠다. 지인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을 찾아봐도 마찬가지다. 큰 병원에 누구라도 아는 이가 없을까? 서너 군데 병원을 수소문해 유명하다는 교수를 찾아 한참 만에 진료일정을 잡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쳤다.

상황2. 겨우 얻은 병실은 특급호텔보다 비싸다. 수많은 검사를 꼭 해야 하는 지 의문이지만 어쩌겠나.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솔직히 누가 수술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말 많은 대리수술은 아닌지, 그냥 믿기로 했다. 수술이 끝났지만 그 명의라는 교수는 얼굴 보기 힘들다. 수많은 의사들이 다녀가지만 누가 의사인지 의료보조인력(PA)인지 구별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병원인데 어쩌겠나.

상황3. 내일이면 실밥을 뽑는다니 다행이다. 아직 힘들고 통증이 심해 집에 가긴 불안한데 퇴원지시가 내려졌다. 고속으로 두어 시간을 달려온 먼 곳이라 자주 다니며 치료하기도 어렵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투여하러 수개월을 다녀야 한다니 어쩌나. 명의는 왜 서울에만 있는 건지. 광고에 나오지 않아도 실력은 있다던 근처병원에서 수술 받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큰돈은 이미 다 든 것 같은데 지금 받아 줄 병원이 있을까 모르겠다. 어쩌겠나, 근처 병원에 가서 사정을 해보아야지.

이 환자가 겪은 일에서 우리의 의료현실을 볼 수 있다.

첫째, 건강은 국민의 권리이며 국가는 적절한 병원과 의사를 국민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 중병에 걸리면 대부분 선진국은 주치의가 치료받을 병원과 의사를 체계적으로 안내한다. 주치의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상급병원은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곳임에도 교수들은 병원수익의 절반을 차지하는 외래환자 진료에 매달리느라 입원환자를 돌볼 겨를이 없다. 믿고 찾아 온 명의는 입원만 시키고 대부분 진료는 다른 의사들이나 심지어 의료보조인력에게 맡기고 있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전공의의 이탈에 대형병원들이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이유다. 상급종합병원 로비를 가득 메운 환자는 우리나라 병원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수술한 환자의 곁을 밤새 지키는 교수가 그립다. 상급병원의 외래를 없애고 입원한 중증환자만 진료하게 하는 것이 의료전달체계의 출발이다.

셋째, 지역에 믿을 만한 병원이 없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질환을 제대로 치료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줄 병원은 사는 곳 가까이 있어야 한다.

적정한 규모와 시설을 갖춘 공공병원을 지역에 많이 설립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사명감과 실력을 갖춘 지역의사가 충분히 필요하다.

젊은 의사들의 고뇌는 한국의료가 가지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각고의 노력으로 의사자격을 얻었지만 끝없이 길어지는 수련기간, 전문의자격을 얻은 이후에도 반이나 개업하며 벌어지는 생존경쟁, 히포크라테스 정신 구현은커녕 과잉진료에 내몰린 선배들을 보며 느끼는 자괴감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다가오고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표현된다.

의사라는 자부심을 지키며 적정진료를 펼치고자 근무할 제대로 된 공공병원은 찾기 어렵다.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은 환자들과 다를 바 없다.

젊은 의사들의 외침은 결국 잦아들겠지만 이제 정부가 화답해야 한다. 최고의 지성과 존경을 받으며 시민의 아픔을 함께할 '대의(大醫)'를 키워내고 보듬을 큰 그릇인 공공의료를 강화한다는 정부의 확고하고도 구체적인 약속이 이번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의 의지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