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9000호] 인천일보, 역사는 계속된다
[지령 9000호] 인천일보, 역사는 계속된다
  • 조혁신
  • 승인 2020.05.21 20:39
  • 수정 2020.05.21 20:39
  • 2020.05.22 경기판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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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15일 대중일보의 맥 잇는 '인천신문' 석간 12면 발행
1990년 7월15일 창간 2주년에 제호 '인천일보'로 변경
1992년 3월2일부터 16면으로 증면
2000년 7월 조간 20면 전환 … 대장정 길

 

인천일보가 지령 9000호를 발행했다.

1988년 7월15일 창간의 깃발을 올린 인천일보는 창간부터 지령 9000호를 발행한 오늘날까지 지역 언론사를 새로 써왔다. 인천일보의 창간은 인천·경기 최초의 지역언론사인 대중일보의 맥을 잇는 지역언론의 탄생을 의미했다. 인천신문이라는 제호로 시작한 인천일보는 매일 12면 석간으로 발행했다. 1990년 7월 창간 2주년 때부터 제호를 오늘날과 같은 인천일보로 변경했다. 1992년 3월2일자부터 16면을 발행했으며, 2000년 7월 석간에서 조간으로 바꾸고 20면 체제의 지면으로 전환했다.

창간 이후, 인천 시민을 비롯한 경기도민의 애정을 받아온 인천일보는 '애향심 제고, 공동체 구축, 독자성 창출, 공정성 견지' 등 4개 항을 사시로 삼고 정론직필의 길을 걸어왔다.

동국제강 인천제강소 특정산업폐기물 불법 매립, 경기은행 퇴출 저지 로비 사건, 고잔동 유리섬유 불법 매립 사건,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인천공항 입국 비리 사건 등 특종 기사들을 보도하며 인천·경기를 대표하는 지역언론으로서 명성을 드높였다.

물론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있었다. 서울지역 신문의 물량 공세와 언론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경영위기를 겪기도 했다. 뼈를 깎는 고통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독자들의 성원과 지지가 있었다. 이분들의 힘으로 인천일보는 창간부터 지령 9000호까지 한 땀씩 신문을 만들어냈다. 대중일보의 맥을 이은 경기매일신문이 박정희 유신정권의 폭거로 강제 통폐합되었을 때 “우리 모두가 먼 훗날까지 찬란한 영광의 기억을 되새기며 살아갈 것”이라 외쳤던 선배 언론인들을 기억하면서, 창간호부터 9000호까지의 대장정의 역사를 독자들께 드린다.

/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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