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월은 모내기 전투의 달이다. 지금 북한의 농촌과 도시들, 대형트럭들에는 “모두 다 모내기 전투에로!”라는 슬로건들이 펄럭인다. 북한에서 농사는 협동농장원(농부)들만의 업종이 아니다. “숟가락 두는 사람은 누구나 농촌을 지원하라”는 노동당의 정책으로 인민군 장군부터 사병까지는 물론이고 15살 중·고등학생들은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30일간 농촌에서 투숙하며 농사일을 한다. 모내기한 벼와 옥수수 첫 김을 매고 철수 한다. 남한사람들은 의아해 하겠지만 사회주의국가이고 모든 자산이 국가와 인민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북한 특유의 '네일', '내일'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논리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한해에 3번 농촌지원 전투가 벌어진다. 첫 번째는 겨울철 “퇴비지원 전투”다. 도시들에서 인분과 강바닥 객토, 석탄재들을 모아 해당 농촌들에 운송한다. 농촌지역의 학생들은 '개똥 줍기'도 한다.

두 번째가 지금 진행되는 “모내기 전투”다. 세 번째는 “가을걷이 전투”다.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20일 정도 농촌에 진출하여 농민들의 가을걷이를 지원한다.

북한은 전당, 전군, 전민이 달라붙어 한해 농사를 짓는 것이 관습화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농번기가 되면 북한의 농부들은 “지도농민”으로 둔갑한다. 밀려드는 농촌지원자들을 영농기술 지표대로 일을 하도록 깐깐히 지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북한의 협동농장 관리자들은 지원노력이 밀려드는 농번기가 돌아오면 농부들과 지원인력을 슬그머니 뽑아내어 주택건설이나 도로정리를 비롯하여 농사일과 관련이 없는 작업을 벌이다 적발되어 처벌받기도 한다. 북한의 농촌은 협동농장관리제도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은 완전 국유화이지만 농촌의 토지와 자산은 협동농장의 소유다. 북한은 1945년 8월15일 해방 후 일본인과 대지주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무상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 분배했다가 6.25전쟁이 끝나고 1957년까지 개인소유의 토지를 협동농장으로 통합했다. 때문에 북한은 개인농사 제도가 사라진 1957년도를 사회주의 제도가 완성된 것으로 평가한다.

 

임영선 이북9도민정착위원회 사무총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