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나와

내 곁의 강아지 망고와

강아지 꼬리인 척 살랑거리는 강아지풀과 나비와

 

나비 날개에 몰래 키스 중인 저녁 하늘과

풀밭 속치마를 살짝 들치고는

씽 달아나는

 

고양이 수염 달린 봄바람과

노을 속을 나는 새와

새들의 아름다운 워킹과 발들의 수다 소리와

 

소리들이 앉아 알을 낳는 둥지와

내가 잠든 풀밭을

한 손에 가볍게 들어 올린 아이 코코와

코코가 바라보는 호수와 요트와

 

물결을 타고 하늘 가득 퍼지는 어둠과

어둠 저편 우주와 우주 밖의 더 큰 햇빛 우주들이

모두모두 들어 있는 작디작은

 

물방울 모자 삐딱하게 쓰고

꼬마 달팽이 아가씨, 살랑살랑 종이배처럼

어딜 가나요?

 

▶천상병 시인은 그의 시 <소풍>에서 이 세상을 한바탕 소풍을 다녀가는 놀이로 표현했다. 참으로 절창이다. 또한 걸레 중광스님은 이 세상을 `괜히 왔다간다'고 했다. 이 또한 절창이다. 인간이 가지는 한 생애 욕망의 덧없음에 대해 내리친 도(道)의 할(喝). 가고 옴이야 내가 정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고 감에는 항상 걸림이 없는 삶을 살수만 있다면 외로운 산보면 어떻고 아름다운 산보면 어떻겠는가. 단 한 순간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늘 두리번거리며 겨드랑이 아래 자꾸만 무언가를 쟁여 놓으려고 한다. “잠든 나와/내 곁의 강아지 망고와/강아지 꼬리인 척 살랑거리는 강아지풀과 나비와” 나는, 이미 한 통속이고 만공(滿空)이고 피아의 구분이 없이 하나의 우주가 된 나(我)다. “소리들이 앉아 알을 낳는 둥지와/내가 잠든 풀밭을/한 손에 가볍게 들어 올린 아이 코코”라니 ….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세계가 거느린 억압의 불편함을 항상 노래했던 시인 함기석. 그가 오늘은 그 언어의 억압을 넘어 언어가 가지는 뒤뜰, 유희의 장광을 우리 앞에 펼쳐놓고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고 있다.

온 세상에 함께 흐르는 소리와 빛과 바람, 나무와 새와 땅. 나와 너 그리고 우리. 함기석의 시 <외로운 산보>가 만공(滿空)의 우주에서 울리는 화음(和音)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아니 화음(華音)으로 부르고 있다. 아니 아니 화엄(華嚴)으로 부르고 있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