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11주년 백남준아트센터

세계 최초 인공위성 생중계 쇼 등
끝없는 실험 '미디어아트 선구자'
주요작품·자료 11년간 수집 연구
생전 바람대로 예술·사상 보존돼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의 사상과 예술 활동에 대한 창조적·비판적 연구를 발전, 실천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가 8일 개관 11주년을 맞이했다. 작가 백남준에 대한 심층 연구를 바탕으로 동시대 미술에서의 미디어 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국내 유일의 공공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를 소개한다.

▲ 백남준 아트센터 내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 아트센터 내 상품몰 전경.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서울과 홍콩, 일본 등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도쿄대학교에 진학해 미학을 전공했다. 그는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공부하면서 전위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백남준은 기존 예술 규범과 관습을 벗어난 급진적 퍼포먼스의 예술 활동을 펼쳤는데, 이때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백남준은 1963년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변조해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으로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선다.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비디오 영상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작품과 비디오 영상을 결합하고,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비디오 신시사이저(synthesizer, 전자악기의 하나)를 개발했다. 여기에 음악과 신체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가 더해지면서 백남준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가 구축됐다.

백남준은 1984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기획했는데,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전 세계 약 250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산되는 이 생방송 프로젝트로 백남준은 세계적인 천재 아티스트 반열에 오르게 된다.

또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관 대표로 참가한 백남준은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모티브로 동·서양의 이질적인 표상을 담은 작업, '시스틴 채플'을 선보이며,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후 레이저 기술로 영역을 확장해가던 백남준은 1990년대 중반 뇌졸중이 발병했지만, 2006년 마이애미에서 타계할 때까지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백남준의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업 활동들은 지금도 가장 현대적인 예술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는 2001년부터 건립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작가 백남준은 생전에 그의 이름을 딴 이 아트센터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백남준아트센터가 단순히 백남준을 기념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의 예술과 사상이 계속해서 숨 쉬고 생동하는 곳이 되길 원하는 바람이 담겨졌다.

용인에 위치하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는 부지 면적 3만983㎡, 건물 5605㎡, 지하 2층~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다. 곡선을 이루는 아트센터 외관은 백남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그랜드 피아노 형태와 백남준의 영문 이름 성인 'Paik'의 첫 글자 'P' 형태를 띠고 있다.

아트센터의 건축 설계는 400여명이 참여한 국제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독일 건축가 크리스틴 쉐멜(Kirsten Schemel), 마리나 스탄코빅(Marina Stankovic) 등과 공동으로 디자인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개관과 동시에 경기도 대표 건축물로 인정받았다.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을 시작으로 제4회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 건축물 위락용부문 최우수상(2008), 경기도건축문화상 사용승인부문 은상(2009), 좋은건설발주자상 우수상(국토해양부장관상·2009) 등을 연이어 수상했다.

백남준아트센터 내에는 전시실과 비디오 아카이브, 다목적실 등이 주요시설로 갖춰져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1층에 자리하고 있는 예술전문 공공도서관인 백남준 라이브러리는 5000여권의 국내외 단행본과 전시 도록, 1000여권의 정기간행물, 850여건의 오디오 비주얼 자료, 주요 작가들의 아티스트 파일 등을 열람할 수 있다. 아트센터 소장 도서와 미디어, 아카이브 자료를 누구나 쉽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백남준아트센터만의 소장품

▲ 아트센터에 전시된 백남준의 'TV정원'./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 아트센터에 전시된 백남준의 'TV정원'./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의 예술적 궤적이 살아있는 비디오 설치와 드로잉을 비롯해 관련 작가들의 작품 250여점과 비디오 아카이브 자료 2770여점을 소장 중이다. 백남준의 주요 작품과 자료를 수집하면서 백남준의 예술세계에 대한 연구와 전시의 중심을 이루고자 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주요 소장품으로는 백남준의 대표작 중 하나인 'TV 정원(1974~2002)'이 있다. 열대 숲의 원시적 생명력과 비디오 판타지의 리듬이 주파수를 맞추면서 생명박동을 낳는 작품이다.
이어 'TV 정원'이 탄생한 이듬해인 1975년 마사 잭슨 갤러리에서 '하늘을 나는 물고기'와 함께 등장한 'TV 물고기'(비디오 물고기·1975~1997)가 있다. 총 24개의 19인치 모니터와 수족관으로 구성된 비디오 설치 작품으로, 수족관 안에 담긴 살아 있는 물고기가 그 뒤에서 어른거리는 비디오 영상 속 물고기와 함께 중첩돼 보인다.

이와 함께 1963년 독일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 전시된 13대의 실험 TV 중 하나인 '참여 TV'(1963)와 초생달이 보름달에 이르는 과정을 12개의 모니터로 보여주는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2000), 소형 비디오 모니터 여러 대를 샹들리에 형태로 구성해 천장에 설치하는 시리즈 중 처음 제작된 작품인 '비디오 샹들리에 No.1'(1989) 등이 있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국내외 미술관·대학 협업해 학술연구 매진"

▲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한 작가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학술 연구'입니다. 그동안 백남준아트센터가 다져온 탄탄한 학술 자원을 발판으로 중장기적인 연구 체계를 정립해 나가겠습니다."

김성은(사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23일 개관 11주년을 맞이해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학예연구원으로 처음 일한 미술관이 바로 백남준아트센터였다는 김 관장은 센터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안팎에서 지켜본 백남준아트센터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김 관장은 "(백남준아트센터는)관행을 타파하면서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미술관 역할을 실천해 국내 미술관 지형에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다"며 "'우리는 열린 회로 안에 있다'고 말한 백남준의 정신을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는 하지 못할 프로젝트를 과감히 시도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가치를 생산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백남준아트센터가 미디어 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공미술관으로서, 깊이 있는 '학술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관장은 "국내외 미디어 아트 전문 미술관은 물론 관련 연구자들이 있는 유수 대학 등과 협업할 것"이라며 "소장품 콘텐츠 파워를 높일 수 있도록 미술사 외에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 관점도 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마지막으로 "비전과 미션, 정책과 제도, 기획과 실행이 종합적으로 작동하는 미술관에서 무엇보다 우선인 것은 '사람'"이라며 "직원과 관객, 미술가, 기획자, 연구자 등 모두가 구성원으로 느낄 수 있는 미술관, 작더라도 능동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미술관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아 기자 asa8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