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처럼 편하고 새로운 상상처럼 설레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들이 있다. 그저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쉼'이 있는 이 곳은 지역주민의 문화생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공간을 채운 것은 단순한 미술, 음악이 아니라 '마음'이다. 문화가 우리 일상에 침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들, 인천 지역 곳곳에 숨어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찾아 봤다. 지난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면, 새해는 쉼을 찾아 조금은 여유롭게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중구, 미추홀구, 서구, 남동구에 특색있는 공간들을 소개해 본다.

▲ 이곳을 가장 먼저 찾는 손님은 햇빛이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아침에만 볼 수 있다. 잇다 스페이스를 운영 중인 정희석 작가와 이영희씨는 앞으로 이곳이 오랫동안 지속돼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잇다 스페이스
▲ 이곳을 가장 먼저 찾는 손님은 햇빛이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아침에만 볼 수 있다. 잇다 스페이스를 운영 중인 정희석 작가와 이영희씨는 앞으로 이곳이 오랫동안 지속돼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잇다 스페이스

 

#잇다 스페이스
소금창고서 갤러리로 … 100년의 흔적 곳곳에

공간사용설명서: '잇다 스페이스'의 한 벽면에 '오동나무' 뿌리가 자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이 오동나무는 나무 기둥을 잘랐으나, 계속 성장하고 있다. 봄이 오면 새순을 틔우고, 잎이 자라 그 모습이 장관이다. 공간을 보수할 때, 정희석 작가는 이 뿌리가 자랄 수 있도록 천장의 한 귀퉁이를 투명 아크릴로 시공해 자연빛이 공간에 들게끔 했다.

6·25 전쟁도 이겨낸 공간. 192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공간은 세월만큼이나 다양하게 활용됐다. 소금창고에서 여성전용한증막으로, 그 다음에는 동양서림이라는 책방으로 사용됐다가 현재는 시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곳의 이름은 '잇다 스페이스'로 정희석(45) 작가와 그의 아내 이영희(44)씨가 운영을 하고 있다. 처음 이곳을 발견한 것은 정희석 작가였다. 그는 작업실을 찾기 위해 동인천을 찾았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잠시 발길을 멈춰 쉬려던 찰나 골목 사이로 보이던 붉은 벽돌에 이끌려 이 곳을 발견했다. 공간의 명칭인 '잇다 스페이스'에서 운영지기의 바람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공간을 통해 사람과 사람사이가 연결됐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잇다'라는 표현을 썼어요. 지금은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나누기 위해 갤러리로 활용 중이에요."

그렇게 이 공간을 발견한지 올해로 3년이 되는 해다. 이영희씨는 이곳을 운영하면서 하루하루가 새롭다고 한다. "이 공간이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문화 활동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한 뒤 올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들은 앞으로도 시민들에게 더욱 좋은 문화를 제공하기 위해 '잇다 스페이스' 근처에 또 다른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인천 중구 참외전로 172-41

 

#엘림아트센터
빈티지 오디오·스피커 '아날로그 감성' 소환

공간사용설명서: '엘림아트센터'에는 모임을 위한 소소한 공간 '빈티지 오디오 갤러리'도 준비돼 있다. 1930년부터 1940년대의 빈티지 스피커와 오디오로 듣는 아날로그 음악 감상실로 소규모 단체 모임을 진행할 수 있다. 4개의 오디오 갤러리가 있다. 간단한 음식물 섭취도 가능하다. 미리 예약을 해야 되며, 1시간당 5만원이다.

웅장한 울림으로 청라를 들썩이게 한다. 엘림아트센터는 2016년에 개관한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다. 메인인 엘림홀은 300석 규모로 공연장 내부는 자작나무로 디자인해 자연스럽고 편안한 어쿠스틱함을 풍긴다.
특히 이곳은 난방시설로 온돌을 설치했다. 온풍기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소음이 연주회를 방해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또 홀 중앙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파이프 오르간도 만날 수 있다.

독일 'Gerald Woehl'사가 만든 이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고 소리를 수정하기까지 9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렇다면 이곳을 만든 사람은 음악 전문가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지만 의외로 이곳을 운영하는 이는 음악과 무관한 기계공학과 출신인 기업인이다. 엘림아트센터 이현건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체나 기체의 흐름을 제어하는 밸브 제조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자신의 회사까지 설립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오디오 수집을 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엘림아트센터를 세웠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준석(33)씨는 공연장을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는 어릴적 부터 아버지가 수집해 온 오디오로 클래식을 들으며 컸다고 한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그 쪽으로 재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아버지와 같이 공학도가 됐어요. 기계를 잘 알기 때문에 엘림에 있는 음향기기들에 수리가 필요하면 제 손을 거치게 돼요."
앞으로 그는 아버지와 같이 엘림아트센터가 지역주민들의 삶에 한부분이 될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천 서구 크리스탈로 78

▲ 블루체어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본 모습으로,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음료를 즐기고 있다. 이곳에 보이는 가구들은 안정호씨가 직접 만든 가구들이다. 안정호씨와 양태호씨는 '블루체어'라는 이름에 맞게 언젠가는 블루색 가구들로 이곳을 꾸미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 블루체어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본 모습으로,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음료를 즐기고 있다. 이곳에 보이는 가구들은 안정호씨가 직접 만든 가구들이다. 안정호씨와 양태호씨는 '블루체어'라는 이름에 맞게 언젠가는 블루색 가구들로 이곳을 꾸미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블루체어
조각가가 다듬고 미술가가 그려낸 '꿈 공방'

공간사용설명서: '블루체어'에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말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길 추천한다. 1층에 있는 목공방을 지나 4층에 있는 커피숍을 가기 위해서는 계단 또는 엘리베이터를 선택해야 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면 빠르게 갈 수는 있겠지만, 계단 중간 중간에 전시된 그림들을 볼 수 없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면서 작품들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다.

소울이 넘쳐나는 공간인 블루체어, 그 곳은 사람을 웃음짓게 한다. 안정호(33)씨와 양태호(30)씨는 2016년부터 이 공간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1년 동안 서로 필요한 것들을 준비를 하고, 올해 본격적으로 공간을 만들어나갔다. 안정호씨는 1층에서 목공방을 운영한다. 중앙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나무'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렇게 나무를 다루는 직업을 갖게 됐다. 단순히 그는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공방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양태호씨가 운영하는 블루체어는 안정호씨가 만든 가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의 애정이 담긴 가구들이어서 그런지 커피숍의 분위기는 따뜻함이 넘쳐난다. 특히 블루체어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는 것은 양태호씨가 그린 그림이다. 그만이 가진 다듬어지지 않은 예술혼을 엿볼 수 있다. 또 매달 한 번씩 선보이는 공연들로 이곳은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곳을 '블루체어'라고 정한 이유는 안정호씨가 해외여행을 갔을 때 봤던 '파란의자'가 무의식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상 속에 있는 그 '파란색'을 찾기 위해 안정호씨는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조력자 양태호씨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목적을 가지고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자신처럼, 이곳이 누군가에게 '꿈'을 찾아주고, 이뤄주고, 만들어 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인천 남동구 장자로 6번길 69

 

#공간 듬
때론 사랑방, 때론 전시관 … 누구든 자유롭게

공간사용설명서: '공간 듬'에는 숨은 공간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꿈에 들어와'는 복층구조로 돼있다. 그저 무심코 지나칠 때는 보지 못하고 마는 이 복층을 올라가 보자. 미지의 세계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라갈 때는 꼭 운영지기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 복층이다 보니 안전에 유의해야 되기 때문이다.

똑똑,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빽빽한 주택사이에서 문을 활짝 열어둔 이곳은 '공간 듬'이다. 2014년 12월에 개관해 올해 4년째가 된 이곳은 지역주민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바쁘고 지친 생활속에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한가하게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싶었으나, 주변에 문화를 즐길만한 장소가 없던 지역주민들은 청년작가들과 함께 자신들의 집 주변에 문화향유공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형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고 작품 전시를 하기도 하고, 문화 수업들을 꾸리면서 문화보급지로 발전하고 있었다. '공간 듬' 옆에는 '꿈에 들어와'라는 또 다른 공간이 있다. 이곳은 '공간 듬'과 다르게 전시 대신 교육공간 혹은 모임공간으로 이용된다. '공간 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가정집처럼 아늑하고, 따뜻함을 풍기는 한옥구조로 2층 다락방은 이 공간의 또 다른 숨겨진 장소다.
이 곳은 가정집인 적도 있고, 교회 목사님의 거주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운영을 맡고 있는 윤대희(34) 서양화 작가에게 이곳은 '숙제'와 같은 공간이라고 한다.

"처음에 이곳을 만들기 시작할 때 단순히 문화 활동을 향유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을 하다 보니, 정확한 정체성이 없었어요. 이제야 갤러리로 활용도 하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이 공간에 어떤 분들이 찾아와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가 되는 것 같아요." 인천 미추홀구 주승로 69번길 22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