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칠성, 널 믿고 바다로 간다
▲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에 빛을 비춰 안전한 입·출항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긴 연안부두의 '연오랑 등대'.
▲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팔미도 등대'.
▲ 인천 지역에서 가장 최근에 세워진 '영흥도 등대'.
20171214010059.jpeg
▲ 바다 갈라짐 현상으로 유명한 소야도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소야도 등대'.

인천 앞바다에는 총 42개의 등대가 있다.

4개의 유인등대와 38개의 무인등대로 이뤄져있는데, 이 중 역사·지리학적으로 주요한 등대 7곳이 북두칠성 별자리 모양으로 반짝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된 팔미도 등대부터 두번째로 불을 밝힌 소청도 등대, 가장 최근에 생긴 영흥도 등대까지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인천항 입출항 선박의 길잡이가 돼주며 유용한 역할을해오고 있다.

일곱개의 반짝이는 별처럼 인천의 바닷길을 밝혀주는 북두칠성 등대를 소개한다.



▲소청도 등대 (설치일: 1908년 1월, 높이: 18m)

북두칠성 등대 가장 북단에 위치한 소청도 등대는 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설치된 등대다. 소청도 서쪽 끝 83m 고지의 절벽 위에 서 있다.

1908년 1월 일본인들이 대륙 침략을 위해서 만든 이후 지금까지 하룻밤도 어김없이 밤바다에 불을 밝혀오고 있다.

초기에 세워졌던 10m 높이의 등대는 2006년 4월까지 불을 밝힌 후, 지난 2007년 4월 인천지방해양항만청에 의해 현대식 등대로 새롭게 단장했다. 등대는 교체됐지만 등명기는 현재까지 유지되며 백 년 동안 쉬지 않고 돌고 있다.

36km 먼바다까지 환히 비출 수 있는 소청도 등대는 촛불 15만개를 동시에 켠 것과 같은 밝기다. 서해에서 조업을 하는 어민들을 위해 불을 밝혀주고, 안개가 짙게 낀 날에는 6km 전방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에어 사이렌을 울려 신호를 보내고 있다.

등대지기의 허가에 한해 등탑까지 올라가 전망을 관람할 수 있으며, 옛 등대가 있던 자리에는 해시계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연안부두 연오랑 등대 (설치일: 1994년 12월, 높이: 11m)

인천 연안부두의 역무선 방파제 등대는 전국의 연오랑 등대 4곳 중 하나다.

'연오랑 등대'라는 애칭은 신라시대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에서 비롯됐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지만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이 다시 빛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인천항을 입출항하는 선박에 빛을 비춰 안전한 입출항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연오랑 등대'라고 지어졌다. 신라 설화 속 '연오랑과 세오녀'는 바다를 뛰어넘는 사랑을 뜻하며, 등대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하늘도 감동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994년 12월30일 방파제 준공에 맞춰 홍 망대형 철탑조 형태로 임시 설치됐다. 현재의 모습인 홍원형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로는 1997년 12월20일에 설치됐다.

홍색 불빛을 5초에 한 번씩 반짝이며 약 9해리(약 15km) 떨어진 해상에서도 항해자들이 불빛을 볼 수 있다.



▲월미도 등대 (설치일: 1985년 8월, 높이: 9m)

월미도 등대는 1985년 8월에 설치됐으며 인천항 갑문 북방파제 등대로도 불린다.

월미도 인근의 화려한 불빛을 뒤로하고 밤에 인천항을 오가는 선박들의 뱃길을 환히 비춰주고 있으며, 인천의 등대 중 육지에서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등대다.

야간선박통항이 빈번한 곳에 위치한 월미도 등대는 2010년 등명기를 직경 250㎜에서 300㎜ 크기로 교체해 불빛이 기존 9km에서 17km까지 도달하도록 광력을 증강했다.

또 발광다이오드(LED) 경관조명으로 선박들의 안전운항을 돕고 월미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야간에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팔미도 등대 (구등탑 설치일: 1903년 6월, 높이 7.9m/신등탑 설치일: 2003년 12월, 높이:26m)

팔미도 등대는 1903년 6월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8km 지점으로 서해안의 100여 개 무인도 가운데 인천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등대는 해발 71m 정상에 서 있다.

팔미도 등대는 1883년 인천항 개항 당시 일본과 서구 열강 제국들이 인천항을 원활하게 이용하기 위해 전진기지로 삼으면서 등대의 첫 불을 밝혔다.

일본인들이 프랑스 표지 회사의 기술을 이용해 착공 1년 1개월 만에 등대를 설치했고, 이를 러·일 전쟁에 이용했다.

이후 1950년 인천상륙작전 당시, 팔미도 등대의 등대지기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 석유램프를 켜놓은 채 등명기를 손으로 돌려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상륙작전 성공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팔미도등대는 처음에는 단순히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설치됐지만 현재는 시설물이나 기기를 관리하는 기능까지 맡고 있다.

광복 후 교통부에서 인수하고 9년이 흐른 뒤부터 처음으로 렌즈 내경 300mm, 초점거리 150mm인 백열등이 자가발전 시설로 설치됐고, 안개 신호기가 설치되면서 제대로 된 등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됐다.

이후 1967년 무선전화 설치와 등명기 교체와 부대시설 개조, 1991년 태양광 발전장치 설치 등을 통해 현대화의 단계를 거쳤다. 현재는 기상 관측과 연안지역의 해양 관측까지 하며 여객선은 물론 화물선, 어선 등의 입출항에 없어서는 안 되는 등대가 됐다.



▲선미도 등대 (설치일: 1934년 10월, 높이 19m)

인천에서 37㎞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미도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이 설치된 등대로 주목받고 있다.

해발 157m에 위치해 있으며, 3등급 회전식 대형등명기의 강력한 불빛은 항해하는 선박의 지표역할을 하고 있다.

1934년 10월 설치된 기존 등대는 바닷 바람이 센 절벽 위에서 오래도록 풍상을 견뎌온 만큼 낡고 훼손돼 철거됐다.

이후 2003년 12월 현재의 새 등대가 건립됐다. 19m 높이의 등탑은 당초보다 더 높게 지어져 37km 거리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다.

등대의 불빛을 전달하는 등명기는 우리나라에 몇 대밖에 없는 프리즘렌즈 3등대형 등명기로 12초에 한 번씩 반짝인다. 이는 인천항과 중국간을 운항하는 선박과 북한과의 해상교역을 위해 남북한을 오가는 선박들에게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다.



▲소야도 등대 (설치일: 1985년 7월, 높이: 9.8m)

소야도 등대는 바다 갈라짐 현상으로 유명한 소야도의 동쪽 끝자락, 매바위 모양의 바위(마베뿌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등대와 이웃에 위치한 동백도등대 사이의 좁은 수로를 통과하는 선박들이 바위섬을 피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 '바다사이등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남쪽에서 인천항으로 들어설 때, 이 등대의 불빛과 인근의 동백도등대의 불빛을 기준삼아 항해를 해서 북쪽의 묵통도 등대쪽으로 항해해 묵통도등대를 지나치면 바로 팔미도등대로 연계가 된다.



▲영흥도 등대 (설치일: 2016년 8월, 높이 9.1m)

영흥도 등대는 인천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등대로 진두항 방파제 등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높이 9.7m, 폭 1.5m의 백색 원형 강관구조로 등대의 불빛은 약20㎞의 거리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신나영 기자 creamy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