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폼·연극·얘기 … 동참하고 싶은 사람 여기 모여라

책 읽고 이야기하고픈 사람, 재즈공연을 사진으로 기록하고픈 사람, 요리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 모두 모여라! 우리 동네 곳곳에 숨겨진 문화공간에서 심상치 않은 활동이 펼쳐진다.

인천문화재단은 생활예술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동네방네 아지트' 20곳을 선정했다.

중구부터 동구, 남동구, 강화군까지. 인천 전 지역에 숨은 문화공간에서 열리는 다양한 모임과 기발한 행사들이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에 사는 누구라도 환영한다. 다만 모집이 마감된 곳도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각 동아리나 재단 생활문화팀(032-760-1033)으로 문의하면 된다.


#서랍 안 옷이 다시 옷걸이에 걸리기까지 '리폼맘스'

오전 10시가 되자 엄마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각자 옷을 꺼내 마네킹에 입히고는 "자기 옷 너무 예쁘다~ 내건 이상한 것 같아", "여기 자수 문양 어떻게 했어?"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밋밋한 하얀 원피스에 남색 자수를 넣어 새로운 스타일로 재탄생시킨 박승정(42)씨는 뿌듯한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13살 아들에겐 책가방을 직접 리폼해 줬고, 이번에 만든 이 옷은 8살 딸에게 입혀야겠다"고 말했다.

자수 리폼 수업을 진행할 이미숙 강사는 "지난 번 내준 숙제는 다들 잘 해오셨다"며 "처음엔 이게 맞나 제대로 되는 건가 싶지만 천을 채워갈수록 예뻐지는 게 자수의 매력"이라고 회원들을 격려했다.

이번 주 수업은 '야생화 자수' 넣기다. 회원들은 유행이 지나 옷장 안에서 자고 있던 옷을 가지고 와 디자인을 고민한다. '리폼맘스'의 원칙은 반드시 입고 사용하던 것을 이용한다는 것. 쓰던 것을 예쁘게 변화시키는 게 진정한 리폼이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옷과 어울리는 야생화 사진을 골라 도안을 그리기 시작했다. 청반바지 뒷주머니에 넣을 무늬를 고르던 김금주(40)씨는 화려한 꽃을 택했다. 김씨는 "수업은 3시간이지만 한번 천을 잡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푹 빠지게 된다"며 "나중엔 손가방 같은 소품을 만들어 나도 쓰고 선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리폼맘스'에선 격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동아리 활동이 시작된다. 자수와 페인팅, 아플리케, 패치워크 등 분야별 강사를 초청해 배운다.

윤문정 리폼맘스 대표는 "재활용을 생활화 하다보면 뭔가 필요할 때 사러가기보단 주변을 둘러보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며 "게다가 직접 정성들여 예쁘게 만들어 쓰니 의미있고 주부들은 새로운 취미를 찾아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연기부터 무대 연출까지 '전 좌석 매진'

누구나 한번쯤은 무대에 올라 핀 조명을 받으며 연기하는 꿈을 꾼다. 하지만 학교나 전문 학원, 극단에서 연기를 배우지 않은 이상 꿈에서 그치고 만다.

동구의 '작당'에선 연기에 '연'자도 모르는 청년들이 열정으로 똘똘 뭉쳐 그들만의 연극을 만든다. '한 명의 관객이라도 온다면 매진'이라는 의미의 '전 좌석 매진'이 그 모임이다. 올해 6월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만 되면 연극을 준비했다.

"나현님이 여기서 종소리 들릴 때 등장하시면 되요.", "밝은 성격이니까 한 톤 높여서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곳에선 모두가 배우이자 연출자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따로 없다. 모두가 의견을 내고 최고의 그리고 최선의 방향으로 연극을 완성해간다. 김나현(20)씨는 "대부분 초보자들이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고 재밌는 것 같다"며 "갈수록 인맥을 넓힐 기회가 줄어드는데, 같은 관심사로 또래들과 모이니 새로운 경험과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영화과를 전공한 박태양(28)씨는 "예술 계열은 특유의 군기 문화가 있어 열정이 있지만 문화를 못 견디고 나가는 친구들이 많아 늘 안타까웠는데, 여긴 자유로워 연기를 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며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취미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동구에서 자란 김인숙 작당 대표는 문화예술이 낙후된 이 지역이 늘 안타까워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이곳 젊은이들이 자신처럼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했던 것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그의 바람이었다. 동네 주민인 송경환(21)씨 역시 연극을 하고 싶던 찰나 우연히 지나가다 연극모임을 발견하고 함께하게 됐다.

김 대표는 "꿈과 가능성이 많은 청년들에게 문화 탈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작당과 연극모임을 만들었다"며 "처음엔 '사람들이 올까?' 걱정했지만 많이 와주셔서 고마웠고 한편으론 '그만큼 갈증을 느끼고 있었구나' 싶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웃프지만 유쾌한 대환장 모임 '흙수저 파티'

계급사회를 칭하는 '흙수저'를 내세웠지만 단언컨대 청년 문제를 논하는 진지한 모임은 아니다. 흙수저라고 생각하는 누구나 먹고 웃고, 즐기러 오면 된다.

부평 '어느사이'에선 자칭 인천의 흙수저들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는다. 모임마다 멤버가 바뀌지만 좀만 지나면 다들 '동네 친구'가 된다.

'흙수저 파티'는 흙수저들이 과거의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모임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얻는 프로그램이다. 경제적 빈곤으로 겪었던 크고 작은 아픔을 나누며 공감으로 극복하고, 유쾌함으로 풀어내며 즐기는 모임이다.

이들은 오후 7시에 모여 밥부터 먹는다. '혼밥'이 익숙한 젊은이들은 점점 말문이 트이고 마음이 열려, 각자의 아픈 사연을 나누며 '누가 누가 더 흙수저 인가?'를 겨루는 '흙수저 토너먼트' 시간을 보낸다. 이어지는 '흙수저도 한다' 순서는 청년들의 소박한 버킷리스트를 실현해보는 시간이다. '양보다 질로 음식 시켜보기',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보기', '해외여행 계획이라도 짜보기', '지갑에 현금 넣고 상상해보기', '술보다 안주 많아 보기' 등 듣기만 해도 공감가는 주제를 함께 즐기면 된다. 지난 19일엔 '소고기 배부르게 먹어보기'를 진행해 모인 흙수저들 모두 배부른 추억을 쌓고 돌아갔다.

모임 막바지엔 그동안 모은 흙수저들의 웃픈(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를 담은 소형책자도 만들 예정이다.

흙수저 중 흙수저라는 조윤상 어느사이 대표는 "누군가에겐 조금 불편한 단어이고 힘든 삶일 순 있겠지만 오히려 내려놓고 사람들을 만나면 거부감 없이 재밌는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경제적 빈곤이 청년들의 추억까지 빼앗지 않도록 힘내자는 취지로 동아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흙수저 파티는 격주 수요일 오후 7시 열린다. 인천에 사는 청년 흙수저라면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환영한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