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홍 칼럼니스트·인하대 언론정보학과
▲ 박선홍 칼럼니스트·인하대 언론정보학과

자네를 처음 만난 건, 내가 기자라는 언뜻 화려해 보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였지. 신문사를 다니면서 대학 강단에서 언론의 책무와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는 나를 자네는 무척 따랐지. 자네는 갓 복학한 학생이었지. 쉬는 시간이면 네게 다가와 '어떻게 하면 기자가 되냐'고 묻곤 했지. 난 지금도 자네의 눈망울을 생생히 기억하네.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열망이 가득했던 자네를. 그때 나는 생각했지. 자네 같은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살라고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자네는 자신이 나가야 할 사회를 잘 아는 듯 말하더군. "대학 4년을 다녔지만 남들처럼 해외 어학연수나 인턴 경험 등 그럴싸한 스펙도 없고 영어실력은 중상급 수준이지만 외국인과 농담을 할 정도는 안 돼 불안해요"라고. 그러면서 자네는 말했지. 취업이 될 때까지는 졸업을 미루고 수료상태로 대학생 신분을 유지해야겠다고. "저는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흙수저'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부모님과 형, 여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가정이지만 늘 웃음이 가득합니다"라고 말일세. 그러다 입버릇처럼 "그런데 말입니다. 교수님, 취업이 만만치 않아요, 사회에 나가는 게 두렵습니다"라고 말했지.

맞네. 자네가 버텨야 할 사회는 활짝 문을 열어줄 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네. 청춘은 실패하고 아파해도 된다는 말로 위로하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 진정한 위안도 용기를 주는 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막연하게 '큰 꿈을 꿔라, 그리고 도전하라'는 구호도 삶에 큰 도움이 안 되지. 그래서 나는 감히 조심스럽게 말하네.

첫째, '성급해 말라'일세. 인생은 긴 마라톤이네. 지금 남보다 3년여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최종 결승점에서까지 패배자가 되는 것은 아닐세. 인생 성공은 일찍 취업했거나 좋은 집안 환경에서 좋은 대학을 나온 이들의 몫이 아니라는 거지. 인간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는 시대일세. 대학을 졸업한 뒤 남은 인생이 최소 70년이라면 남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다고 불안해 말라는 걸세. 대부분 초중고, 대학, 유학, 군 생활, 인턴 등 평균 30세가 돼서야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 하지만 자네가 알듯 그렇게 30년 만에 들어간 직장은 20년은 커녕 10년도 채 안 돼 '구조조정이다, 명예퇴직이다'라면서 다시 사회로 내버려지지. 이렇듯 두둑한 배짱이 없으면 견디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사회이고 삶일세. 그래서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라는 것일세.

둘째는 '공부하라'일세. 20년 넘게 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자네에게는 너무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네. 내가 이야기하는 공부는 토익 시험문제 하나 더 맞고 전공용어 하나 더 외우는 그런 공부가 아님을 눈치챘을 것이네. 오죽하면 사람이 죽으면 덮는 관에 쓰는 글인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에 '학생'이 들어가 있겠나. 이제 공부는 자네가 목숨을 걸만한 일이나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 찾아보고 익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나. 그러면 공부가 자네를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 알게 될 걸세. 그게 삶의 무기이고 경쟁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생존전략이기 때문일세.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게나. 그것이 취미라도 자네를 지키는 자존이 될 걸세.

셋째는 '겸손하라'일세. 나는 내가 누구를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네. 우연히 선생이 됐고 아직도 모자람이 많다는 것을 잘 아네. 나도 사람인지라 우쭐하고 자만한 적이 많다네. 그래서 자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은 '자신을 낮추라'는 말일세. 고개를 숙이면 보이고, 들면 안 보이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일세. 먼 곳을 바라보되 고개를 숙여 가까운 것부터 챙기게나. 내 가족, 내 친구부터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게나. 이들이 자네의 버팀목이고 지지자일세. 내가 사회와 국가, 더 나가 세계적인 문제를 생각 말라는 것이 아닐세. 가슴에 큰 뜻을 품되 작은 것, 바로 옆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게나.

무엇보다 겸손하고 절제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말게나. 이들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으로 살게나. 그것이 연봉 1억의 '직장인 K'가 아닌 '인간 K'로 영원히 사는 것일 걸세. 자네의 건투를 비네. 늘 응원하겠네. 내 사랑하는 K. /박선홍 칼럼니스트·인하대 언론정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