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
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

며칠 전 동구청(장)이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내에 '옛 생활체험관'을 설치 및 운영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려다 구의회 심의에서의 부결로 좌절되었다. 이 시설은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1박을 하며 아이들은 부모님 세대들의 힘겨웠던 옛 생활을 체험하고, 부모는 유년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끔 한다는 목적으로 계획하였다 한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가난을 관광 상품화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이 소식이 주요 언론에 보도되면서 수많은 누리꾼들의 비난이 들끓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구의회의 부결 이유는 주민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상식을 지닌 구청장이라면 이 지점에서 "의회의 이러한 결정을 존중하며 해당 지역 주민들은 물론 구민들에게 본의 아닌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 죄송하고,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주민과의 대화와 소통에 나서겠다."고 하면 마무리 될 사안이었다. 그러나 동구청장은 그러지 않았다.

이날 밤 SNS에 "오늘은 (…) 전국방송에서 괭이부리 체험관 때문에 야단이 났다. 이 체험관을 누가 계획하고 추진했는지 아직 관광개발과에 묻지 않고 있다. 왜? 난 그 사람이 누구든지 적당한 기회를 봐서 칭찬하고 격려해 줄 생각이다. 진정 용기 있고 일할 의욕이 있는 직원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리고 "변화와 개혁! 누군가 그랬다. 그것은 피를 흘리는 전쟁보다 어려운 것이라고~~♡"이라고 덧붙였다.

길지 않은 글이기도 하지만 이를 그대로 인용한 점은 동구청장의 태도와 사고를 함께 엿보기에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비겁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사업을 계획하고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집행부의 수반인 자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담당자를 찾아 "칭찬하고 격려해"주겠다며 이른 바 '유채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은연중에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꼼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례까지 제정을 해야 될 정도의 사업이라면 사전 담당 직원들과 여러 차례 논의와 검토를 하고 보고를 받아 최종적으로는 구청장이 서명을 해야만 하는 사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다소 의아(?)한 점은, 아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점은 해당 직원을 "용기 있고 일할 의욕이 있는 직원"이라고 평가하며 '칭찬하고 격려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자면 이 사업 은 내가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잘했다는 것이다. 교묘히 자기 책임에서 빠져나가면서도 자신의 심중을 헤아려 알아서 일하는 부하를 보호해주는 통 큰 '보스'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나아가서는 스스로를 '변화'와 '개혁'의 주체로 설정하며, 어떠한 희생과 어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를 이루려는 영웅으로 묘사한다. 그 순간 이를 비난했던 모든 사람들은 역으로 변화를 두려워하여 제동을 거는 수구주의자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어이상실의 태도와 사고가 어디에서 왔을까? 동구청장이 지닌 이러한 정신적 상태와 구조, 이른 바 '멘탈'을 분석하고 해명해내지 않으면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듯하다. 이를 필자는 무엇이든 돈벌이만 된다면 용서가 되고 성공으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의 어긋난 풍조가 한 소영웅주의자 호기(豪氣)에 착종되어 나타난 욕망의 변형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다보니 목적만 옳다고 하면 이를 구현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내용과 방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자기 확신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목적도 잘못되었지만 내용과 방법 모두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동구청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역사의 숨결, 문화도시 인천 동구'라는 도시 비전을 세우고 '동구 고유의 역사문화자원에 새로운 문화관광 아이템을 도입해 도시 전체를 문화관광 도시로 재창조해 도시의 활력을 회복하고자'(취임 1주년 언론 인터뷰) 관광벨트화 등 여러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하나의 도시를 총체적인 관점에서 진단하며 '지속가능한 도시'나 '열린 도시 공동체' 등 거시적인 비전과 방향성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하나씩 모색해 나가는 결과로서 관광을 기대하거나 병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광' 자체로 이를 이루려 하고 있다. 그것도 역사와 문화, 생활 생태에 대한 철학도 깊이도 없는 천박한 마인드로 말이다.

더욱 안타깝고 위험스러운 점은 이 모두를 자신의 이름으로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함께 상의하고 주민들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겠다는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내가' 하겠다, '내가' 해주겠다, 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자신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성은을 베푸는 군주로 착각하는 이러한 사고와 태도 속에 주민들은 결국 소외되고 구청장이 이룬 성과의 수혜 대상자로 전락된다.

이러니 "우리가 동물원의 원숭이냐?"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키려는 지역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릴 리 만무하며, 이조차 돈의 논리를 내세워 입을 막으려 든다. 수평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에 수직적 통치자를 '모셔야' 하는 불행한 동구다. /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