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교수
모세종 인하대교수

태어나자마자 자기 힘으로 일어나 뛰어다니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태어나 오랜 기간을 부모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 수 있고, 성장하는 동안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타인의 도움과 배려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 스스로 자라 성공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사회에서 도움을 준 자들에 대한 고마움은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키워주신 부모에 대한 효를 최고의 가치로 삼듯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 자들에 대한 신의 있는 행동 또한 우리가 지켜야할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 도움을 준 자도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모 역시 선대 부모의 도움이 있었기에, 어떤 성공한 자도 부모는 물론 선배나 지인,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만은 못하더라도, 사회에서 맺은 인간 사이에서도 선배가 후배를 배려함은 응당 해야 할 역할로 생각해야 한다. 효도를 바라고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닌 것처럼 대가나 보답, 또는 맹목적 충성을 바라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도와준 자에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아, 불협화음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저 친구 내가 키워줬는데, 내가 도와줘서 성공했는데, 성공하고 나니 싹 달라졌다며 나쁜 사람이라고,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비난을 한다. 누구 덕에 그 자리에 올라왔는데 내말을 안 들어 하면서 치졸한 공격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잘해줬는데 내 뜻에 따라야지 하는 생각은, 자신의 성공 역시 타인의 도움이 있었음을 망각한 행위이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자연의 순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나의 도움으로 성공한 자가 있다면 그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타인를 위해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응당 따라야 할 일을 거스르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배신으로 지탄 받아 마땅하지만, 옳지 않다거나 소신에 반한다 생각하여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배신이라기보다 소신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배신이란 믿음을 거스르는 행위이지만, 악의 무리가 아닌 이상 그 믿음은 선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쁜 짓이며 잘못된 행위임이 명백한 상황에서 이를 거부하는 행위를 배신이라 할 수는 없다. 부정을 바로잡기 위한 내부고발이, 상관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것이, 집단따돌림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 배신일 수는 없다. 범죄나 악행에 가담하지 않는다고 이를 배신이라 하는 것은 부당한 사익을 꾀하는 그릇된 자들의 논리인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배신이라는 용어에 한바탕 회오리가 있었다. 정치하는 자들도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니 사적영역에서의 표현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적영역에서의 배신이란 국가와 국민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만큼 그 의미하는 바는 사뭇 엄중하다 할 것이다.

정치가든 누구든 직분에 따라 맡은 바의 역할이 있는 것이니 서로 다른 견해를 표출하는 것은 건강한 민주사회의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보은이라는 명목으로 정치행위가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배신이라는 표현은 국민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인간관계에서 신의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도움을 받고서 이에 보답을 하기는커녕 배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은혜를 베풀었는데 자신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여 이를 탓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만이 선이라 믿는 지나친 우월의식이나 조급함으로 비칠 수 있다.

사욕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는 행위라면 배신이라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옳다고 믿는 소신 있는 행위라면 용기라 칭찬 받아야 할 일이다. 아부하고 맹종하는 자만이 득세하기 쉬운 시대에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일 것이다.

잘못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자들의 보기흉한 몸부림이 신의이고,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배신으로 내몰려서는 건전한 사회 건설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설령 은인의 뜻이라 해도 무조건 따르는 맹목적인 충성보다는 선과 공익을 위한 소신 있는 행동을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기득권층일수록 소신은 없고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아부하고 줄서기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사적인 충성을 위하여 민의를 무시하고 매사 자신의 권한이라며 독단을 일삼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공적 사회가 아닌 사적 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사회에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늘 보아왔다. 대의가 아닌 소의에 신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임을 명심하고, 악을 위한 의리보다는 선을 위한 소신 있는 행동을 보이는 자들이 좀 더 나오기를 기대한다. /모세종 인하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