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차·맷돌 선물에 詩로 사례 표시…졸음 쫓기·갈증 해소 효과 언급
▲ '차 가는 맷돌을 준 사람에게 사례하다(謝人贈茶磨)'
 
이규보의 다시(茶詩)에는 차의 약리적 효과를 언급하는 부분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졸음을 쫓는 각성 효과와 갈증을 해소하는 해갈 효과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음의 시문은 각성 효과와 관련된 경우들이다.
 
 <고우가(苦雨歌)>
 愁霖一月如懸河(수림일월여현하) 지겨운 장마 한 달 동안 강물을 쏟듯 하더니
 晝夜昏黑藏羲娥(주야혼흑장희아) 밤낮으로 깜깜하게 해와 달 가렸네
 ……
 甕中美酒香已訛(옹중미주향이와) 독 안의 좋은 술 향기 이미 변했으니
 詎可酣飮令人酡(거가감음령인타) 어찌 맘껏 마실 것이며 마신들 취하겠는가
 箱底芳茶貿味多(상저방다무미다) 상자 속의 좋은 차는 맛이 많이 변했으니
 不堪烹煮驅眠魔(불감팽자구면마) 끓여 먹더라도 졸음을 쫓지는 못하겠네
 ……
 率然忽作苦雨歌(솔연홀작고우가) 갑자기 고우가를 짓는다

 
한 달 동안 '강물을 쏟듯' 비가 내렸다. 기나긴 장마는 해와 달을 가린 데 머물지 않고 습도를 지나칠 정도로 높혀 놨다. 술맛이 변하고 상자 속의 찻잎 색깔이 변한 것도 습도 탓이었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작자는 술을 맘껏 마시더라도 술맛을 느낄 수 없고 차를 '끓여 먹더라도 졸음을 쫓지는 못'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시문으로 나타냈다.

이것이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괴롭다는 <고우가(苦雨歌)>의 등장 계기이다. 여기에 차(茶)에 대한 작자의 소양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차의 색깔이 변하면 약효가 떨어져 졸음을 쫓지 못할 것이란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이른바 각성(覺醒)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차 가는 맷돌을 준 사람에게 사례하다(謝人贈茶磨)>
 琢石作孤輪(탁석작고륜) 돌 쪼아 만든 바퀴 하나
 廻旋煩一臂(회선번일비) 돌리는 데 한쪽 팔만 쓰네
 子豈不茗飮(자기불명음) 자네도 어찌 차를 마시지 않겠는가
 投向草堂裏(투향초당리) 초당 쪽으로 보내주었나
 知我偏嗜眠(지아편기면) 내가 잠 즐기는 걸 알고
 所以見寄耳(소이견기이) 이것을 나에게 부친 거네
 硏出綠香塵(연출록향진) 갈수록 푸른 분말에서 향기 나오니
 益感吾子意(익감오자의) 그대 뜻 더욱 고맙기만 하네

 
찻잎 가는 맷돌을 선물로 받고 난 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시문이다. 맷돌을 보낸 사람은 작자가 잠이 많다는 점과 그것을 극복하는 데 찻잎이 최적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 작자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는 자에게 '그대 뜻 더욱 고맙기만' 했다.

찻잎이 맷돌을 통해 분말로 변하자 푸른 향기가 작자의 후각을 자극했고 이어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붓을 들었던 것이다. 맷돌을 보낸 사람이나 그것을 받은 사람은 모두 차의 각성 효과를 알고 있는 다인(茶人)이었던 셈이다.
 
 <일암거사 정분이 차를 보내준 데 대하여 사례함(謝逸庵居士鄭君奮寄茶)>
 芳信飛來路幾千(방신비래노기천) 그리운 소식 몇 천 리를 날아왔나
 粉牋糊櫃絳絲纏(분전호궤강사전) 하얀 종이 풀칠하여 만든 상자를 붉은 실로 감았네
 知予老境偏多睡(지여노경편다수) 내가 늙어 잠 많은 줄 알고서
 乞與新芽摘火前(걸여신아적화전) 새로 나온 화전 찻잎을 따서 구해 주었네

 
위의 시문도 찻잎이 잠을 쫓는 각성 효과가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거사는 '새로 나온 화전 찻잎'의 약리작용이 뛰어나기에 그것을 구해 보낸 것이다. '화전춘(火前春)'은 상등품에 해당하는 차 이름인데 한식(寒食) 이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다.

실제로 갓 채취한 어린 찻잎은 늦게 채엽(採葉)한 것에 비해 카페인이 많이 포함돼 있어 각성 효과가 크다고 한다. 선물을 보낸 거사나 그것을 받은 작자는 모두 '새로 나온 화전 찻잎'의 효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