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 해'진주'… 유럽인 선호 휴양지'1순위'
'세계문화유산'구시가지 고딕·바로크양식 그대로
   
▲ 두브로브니크 입구에 위치한 오노프리오스 샘. 1438년 성 바깥에서 끌어온 물을 모든 시민이 사용할 있도록 만든 돔형태의 물탱크 주변에 많은 관광객들이 운집해 있다.


10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는 유고연방시절부터 발칸반도에서는 잘사는 국가였다. 남북으로 1800㎞에 이르는 긴 해안선의 아름다움은 이곳을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올려놓았다.

지금도 아드리아 해를 끼고 많은 도시들이 형성돼 있으며 바닷가에는 유럽의 유명 연예인과 부자들이 별장을 갖고 있을 정도다.

인근 이탈리아와 그리스와는 달리 관광객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볼 수 없을 정도다.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저렴한 물가도 큰 장점이다.

관광대국으로 올라서면서 다른 발칸국가와는 달리 크로아티아는 내년 EU 유럽연합 가입이 확실시 되고 있다. 크로아티아 정부의 의지도 대단하다.

몇 년 전부터 수많은 외국 투자금이 유입되면서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국가 기반시설을 새로 건설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수도 자그레브부터 남부 유명도시는 두브로브니크까지 연결되는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다. 7~8년 동안 건설 사업을 벌여 지금은 대부분 구간이 완공돼 관광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넥타이가 시작된 나라, 달마시안 개를 자신의 토종견으로 인식하는 나라, 이슬람 지배를 받지 않은 가톨릭국가인 크로아티아. 최근의 비약적인 발전의 모습은 가히 내전의 상처에서 허덕이고 있는 옛 유고연방국가들에게 발칸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아드리아해의 진주'두브로브니크의 전경. 주황색 지붕으로 가득한 16세기 중세도시가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두브로브니크는 완벽한 도시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 도시는 지중해 무역 상권을 두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력한 도시국가로 성장했다.

현재의 조그마한 성곽도시가 아닌 주변 100㎞까지 영향을 미쳤을 정도다. 당시 인구가 5만 명을 넘었고 성벽 안에는 5000명의 시민들이 생활할 정도로 큰 도시였다.
지금은 관광객을 크게 늘면서 물가가 많이 올라 대부분 성곽 외부로 이주해 2000명 정도의 시민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약간의 세금면제 혜택이 주어지고 성곽 안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있을 정도로 자립형 도시인 셈이다.

이 도시는 7세기부터 자치경제권이 형성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나의 작은 섬이었던 이곳은 로마시대부터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해 13~16세기 지금의 성벽 요새를 형성했다.
 

   
▲ 두브로브니크 성곽을 걷다보면 에메랄드 빛,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육지와 섬을 하나로 연결해 성벽을 쌓고 외부의 침입을 막은 것이다.
주로 무역과 어업, 주변 도시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수많은 부를 쌓았다.
두브로브니크는 1900년대 이후부터 불리었고 이전에는 라구사(Ragusa) 공화국이라 일컬어졌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를 실용적인 외교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일명 박쥐정책. 로마시대부터 현대까지 주변 국가의 힘의 균형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적절히 이를 이용해 온 것이다.

로마제국을 비롯해 불가리아, 헝가리, 비잔틴, 오스만 튀르크, 프랑스 등 강대국이 이곳을 지배했지만 자치권만은 인정해 주었다.

지중해 상권을 장악했던 베네치아를 견제하기 위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이슬람과도 손을 잡을 정도였다.
발칸반도 주변에서 밀과 소금을 들여와 멀리 스페인까지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거둬들였다. 하지만 1800년대 남하하는 러시아의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에 도움을 청했다가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하며 멸망의 길을 걷기도 한다.

프랑스에 이어 오스트리아 왕국이 이곳을 진출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하면서 세르비아, 슬로베니아와 함께 왕정국가를 거쳐 2차 세계대전이후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으로 편입된다.

1990년대 유고 내전으로 도시의 상당부분이 파괴되기도 했지만 종전 이후 유네스코 등 국제적인 지원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됐다. 전쟁 당시 이곳을 아끼는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해안에 배를 띄우고 '우리를 먼저 폭파하라'고 외치며 인간방패로 나서 도시를 지켜낸 일화로도 유명하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진정한 낙원을 찾으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을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곳은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 중의 하나다.
 

   
▲ 공원 안에 위치한 폭포와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도시에 걸맞게 지중해 크루즈선이 이곳에 정박한다. 한 번에 많게는 5척의 크루즈선이 정박하면 이 도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시가지로 들어서면 하얀 벽면에 주황색 지붕의 건물들과 석회석으로 잘 정돈된 중앙광장 그리고 좁은 길들과 돌로 만들어진 경사진 길들이 마치 영화의 세트장 같다.

입구에서 오노프리오스 샘을 만날 수 있다. 이 샘은 1438년, 성에서 20㎞ 떨어진 바깥에서 끌어온 물을 모든 시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돔 형태의 물탱크다. 바로 옆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1317년에 문을 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도 볼 수 있다.

종탑까지 약 200m의 중앙로는 1시간 남짓이면 둘러볼 수 있다.
이 도시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성벽투어이다. 단시 성곽 안 시내만 돌아다녔다면 이 도시의 절반도 보지 못한 셈이다.

높이 25m의 성벽을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성벽 왼쪽으로는 수많은 주황색 지붕으로 가득한 16세기 중세도시가 완벽히 재현돼 있고 오른쪽으로는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담을 수 있다.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된 구시가지 전체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발칸의 정원' 플리트비체 공원
자연이 만들어낸 '걸작'

수도 자그레브에서 3시간 정도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크로아티아에서 두브로브니크와 함께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국립공원은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자연의 걸작으로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수많은 폭포들, 울창한 숲이 장관을 이뤄 가족들의 휴양지로 유럽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고지대부터 밑으로 이어진 호수들은 각기 다른 풍광을 보여 주고 있다. 호수를 따라 산책로를 걷다보면 에메랄드빛과 수많은 송어떼, 갈대숲을 보면서 힐링을 느낄 수 있다.

▲ 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