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어가 춤을 춥니다. 춤추고 노래하며 사는 인어는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살까요? 요즘 내가 그리는 그림 시리즈입니다. 접시에 코발트로 그리고 구워냈고 주변을 어울리게 그렸습니다. 더운 여름, 비가 많이 와서 세상이 축축하면 인어가 땅 위로 올라오려나? 올해는 비가 내려도 너무 많이 내립니다. 오늘은 만화 같은 상상을 글로 썼습니다. 2011 김충순. 30X50.1㎝ 청화백자접시. 유채. 수채


아무도 우리가 탱고를 추고 다닌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몸의 이상을 느낀 것은 부에노스에 온 지 6개월이 지나서였다. 나는 직감했다. 내가 한국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픈 몸을 끌고 비행기에 올라타 30시간을 비행하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신중하게 몸의 상태를 체크했고, 초이에게 말하지 않고 부에노스의 국립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았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나는 얼마나 살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즉 내일 숨이 끊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에 가서 다시 정밀진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결과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굳이 내가 이 행복한 탱고를 떠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까지 탱고와 함께 하고 싶었다. 나는 어느날 초이에게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초이는 내가 차려 놓은 식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식탁에는 레드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고 난 후 술은 금기어였으므로 초이가 술을 마시고 싶으면 밖에 나가, 부에노스에서 만난 한국인들 특히 라우라나 그의 남동생 가르시아와 함께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차린 식탁에 와인 병이 놓여 있었으니 깜짝 놀랄만 했다.

이제 나는 마시고 싶을 때 술을 마시며 살겠다고 말했다. 초이는 내 말을 듣고 울었다. 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초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날부터 매일 입에 술을 달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마음 편하게 마시고 싶었을 때 마셨던 것뿐이다.

세상의 햇빛은 왜 그렇게 밝고 투명한지, 새들의 울음소리는 왜 그렇게 맑고 아름다운지.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초이와는 매일밤 섹스를 했다. 처음에 초이는 섹스를 거부했다. 혹시 과도한 육체 에너지의 사용이 내 삶을 단축시킬 것이라는 전혀 근거 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멈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매일밤 초이와 미친듯이 섹스를 했다. 어떤 날은 3시간 넘게 새벽까지 섹스를 한 적도 있다. 마지막 남은 내 육체 에너지의 한 방울까지 모조리 그녀에게 쏟고 싶었다.

나는 내 죽음의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다. 내가 자살사이트에서 상담을 해주었던 고객들의 마음을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죽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간절히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의 수신자였다.

나는 병상에 누워 시름시름 앓다가 점점 에너지가 고갈되어 눈을 감는 그런 식의 이별을 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인가 강렬한 것, 내가 죽고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강렬한 죽음의 의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마 내가 테러리스트였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자살폭탄 테러를 계획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몸은 폭탄과 함께 갈갈이 찢겨져 이 세상에 조금도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아쉬웠다.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갑자기 테러리스트가 될 수는 없다. 여기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인 것이다. 나는 회교도 극렬좌파도 아니고, 아르헨티나 군부집권 당시 비밀리에 숙청당한 가족들을 두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나는 전혀 새로운 방법을 생각했다. 내가 나를 살해하는 것이다. 자살이 아니라 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병으로 죽었다는 끔찍한 사실은 이 세상에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역만 리 타향땅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원인도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갑자기 살해당한다. 멋진 아이디어였다. 나는 나를 살해해줄 사람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 방법은 생각과 달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범인이 잡힌다면 그 사람은 살인범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에게 살인을 청탁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므로 그는 분명하게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15년 이상을 감옥에 갇힐 것이다. 아무리 거액을 준다고해도 그런 살인범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자동차 사고나 절벽 추락사고 등 사고사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시도도 해보았다. 첫번째 시도한 것은 교통사고였다. 내가 교통사고를 내는 게 아니라 미리 약속된 상대의 차가 나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실패했다. 초이와 가르시아를 통해 연락이 된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그 남자는 어설프게 나를 치어 오히려 몸만 아픈 상태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아, 그렇다고 내가 보험을 노린 공갈자살단이라고 생각하면 물론 오산이다. 나는 오래전에 생명보험 등 꽤 많은 액수의 보험에 가입되어는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모를 때였다. 나는 얼마 전 내 보험금의 수령자를 초이로 변경했다. 적어도 초이는 평생동안 의식주 걱정없이 편하게 세계여행을 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초이에게 정말 좋은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하며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초이는 또 울었다. 그녀는 내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초이를 좋아하는 한국남자가 현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남자는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는 초이에게 망설이지 말고 그 남자와 인연을 맺어보라고 권했다.

무조건 내 말만 따라서 초이가 다다라는 그 남자와 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이 역시 그 남자에게 이끌리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초이가 나를 배신한 것은 아니다. 내 말은 진심이었다. 초이는 내 동의 아래 다다와 섹스를 한 것이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흐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초이가 다다와 섹스를 하고 돌아온 날 새벽, 나는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나는 혼자 DVD를 봤다. 제목도 잊어버린 싸구려 액션영화들이었다. 눈은 TV 화면에 있었지만 내 머리 속은 멍해져 있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상당히 착잡했다. 나는 내가 쿨한 남자인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지금 이 순간 섹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