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과 합창


 

   
▲ 인천지방법원 판사 박은진

지난해 인천법원에는 합창단이 생겼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가 '필 받은' 몇몇 판사들이 시작한 노래모임이 2번의 작은 연주회를 거쳐 지금은 35명의 판사와 직원들이 함께 하는 동호회로 발전했다. 대부분 음악과 담을 쌓고 살다가 용기를 내 가입한 단원들이라 연습 때마다 노래가 좌충우돌이다. 노래방에서는 내 멋에 겨워 부르면 그만이지만 합창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사람과 맞춰 가는 과정이다. 음정, 박자는 물론이고 악보 넘기는 타이밍, 심지어 숨 쉬는 곳까지 35명 모두 같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래하는 내내 지휘자의 손짓, 눈짓과 소통해야 한다. 긴 시간 동안 혼자 공부해야 하는 고시생 시절을 보내고 판사가 된 후에도 기록과 책을 보는 것이 주된 일상이 된 필자에게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것은 까다롭고도 신선한 일이었다.

합창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노래 중간에 자기도 모르게 다른 성부의 음정을 따라가 버리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 합창단 연습 중에도 종종 그런 일이 생겨 어느 순간 새로운 노래를 창조(?)해 냈다는 것을 깨닫고 폭소가 터지곤 한다. 이것은 내가 맡은 부분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귀를 막고 자기 소리만 내서는 멋진 화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쓸려가지 않으려면 결국 자신의 노래를 완전히 몸에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한 성부씩 따로 떼어 여러 번 연습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합창을 하려면 옆에서 들려오는 다른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처럼 재판도 나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소들과의 싸움이다. 법관도 인간이므로 자연히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고 타인의 행동을 재단할 수도 있다. 재판을 기계가 하지 않는 이상 법관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을 재판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그로 인해 판단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요소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나에게 판단을 받고 있는 대상도 얼마나 상대적인 존재인지 의식해야 한다. 법정에 선 범죄자는 피해자에게는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사람일 테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족일 수도 있다. 민사소송에서 원고와 피고가 돼 원수처럼 싸우고 있는 두 사람도 한때는 둘도 없는 친구이고 믿음직한 사업 동료였을 것이다.

사실 누구나 마음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타인을 재판한다. '저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줘도 괜찮겠다, 나는 저 사람의 저런 행동이 정말 싫다,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이런 재판의 순간에 옳은 판단을 하려면, 판단하는 내 마음부터 알아야 한다.

아직 부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필자는 타인의 삶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법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민·형사 법정, 조정실, 소장과 준비서면, 수사기록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원인과 결과 사람의 심리와 욕구가 담겨 있다. 사건 기록을 펼칠 때면 내 목소리부터 정확히 파악한 다음 타인의 소리를 듣고 나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멋진 화음이 완성되는 것처럼 내 생각을 끊임없이 점검한 다음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때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사소한 진리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