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방법원 판사 김정아


 

   
 

사과상자! 뇌물전달 수단의 대명사. 형사사건 재판당사자인 피고인으로부터 그것을 배달받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3인 합의에 의해 사과상자를 그대로 반송시키기로 했다. "상자에 담긴 그 마음만을 소중히 받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3, 4년 전 지방의 작은 지원에서 근무했을 때 일이다. 당시 나는 여러 업무를 맡으면서 형사합의부 배석판사로서의 업무도 겸하고 있었다. 업무상배임죄로 기소된 그는 우리 재판부가 재판을 처음 담당하게 됐을 때 이미 구속 상태였다. 유죄가 인정된다면 배임액이 너무 커 실형이 불가피한 상태였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에 극히 간략하게 말하자면 우리 재판부는 그가 스스로 인정한 일부 범죄사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범죄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상 거의 무죄라고 봐도 좋을 만한 결론이었다.

법리적으로 난해한 판단이 필요한 경제사건인데다 농협중앙회의 정책결정, 광우병 파동 등 사회경제적으로 맞물려 있는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했다. 게다가 피고인이 제출한 피를 토하는 듯 억울한 심경을 토로한 글까지 놓치지 않으려 기록검토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판결문을 작성할 때도 다시금 하얗게 밤을 새워야 했다. 그렇게 내놓은 결론이었다.

그 사건은 상급심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져 확정됐고 당사자는 관련 민사소송에서도 형사판결의 결론이 유리하게 채택돼 승소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형사 및 민사소송이 갈무리되자 그는 우리 재판부에 감사의 뜻으로 사과상자 3개를 감사편지와 함께 보내온 것이었다. 그 지방 특산물인 사과를 가득 담아서 말이다.

사법부가 온갖 불신을 받으며 여기저기 상처를 받고 있는 요즘이다. 재판을 하는 이로서 '남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전제하에 최대한 타인(당사자)의 말에 귀 기울이려 애쓰는 것이 몸에 배 있다 보니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라며 전체적으로 보다 자성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법부의 불신 중 상당 부분은 일반인들에게 사법부나 재판제도 등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오해의 산물이라고도 생각한다.

많은 판사들이 그렇듯이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오판을 할 가능성은 있지만(그렇기에 제도적으로도 3심제를 두고 있다) 사건당사자 앞에 사건 앞에 늘 당당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사과상자다운(?) 사과상자와는 무관하게 하루하루 묵묵히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후자 즉 근거 없는 오해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억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내놓는 아이디어 하나! 사법불신의 원인과 대책을 설파한 "불멸의 신성가족"이라는 책을 다같이 읽고 사법부 구성원은 깊은 자성의 기회를 일반 국민들은 사법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