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와 아들  - 고대영 글·한상언 그림/길벗어린이
한 달에 한번 마술에 걸리는 그날이 오면 우리 집에선 세 사람이 생리를 한다. 딸 둘에 엄마까지 셋. 당연하지 싶겠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집 둘째는 아직 하지 않는다. 그럼 누가 하냐고?
남편이 한다.

"엄마, 아빠 나한테 자꾸 왜 그래?"
큰 딸 민정이가 방에서 나오며 볼 부은 소리를 한다.
"왜~ 에?"
"엄마? 재밌어? 왜~에 좀 하지 마."
"그니까~아~ 왜냐고요?"
"아빠가 자꾸 나한테 짜증내."
"너두 나한테 그러잖아. 이제 알겠냐. 네가 성질부릴 때마다 내 맘이 어땠는지…."
"내가 뭘? 생리 하니까 예민해서 그런 거지."
"아빠도 생리하는가 보지."
"맞아. 그런가봐. 엄마, 아빠 생리대는 큰 거루 사."

"민지야, 아빠 식사하시라고 해."
"엄마, 아빠 주무시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남편이 예전 같지 않다.
퇴근하면 저녁 밥 먹고 자전거도 타고 하더니 요즘은 밥상물리기가 무섭게 눕는다.
"자기? 힘들어?"
"힘들긴. 그렇지 뭐…."
"텔레비전 끌까?"
"그래…."
어? 진짜 이상하네. 전 같으면 한창 재밌게 보는데 왜 끄냐고 한 소리 할 텐데
오늘은 순순히 그러란다.
"자기 자?"
"아니 안자."
"자기 책 읽어줄까?."
"그래… 아? 아니다 내가 읽어 주께."
이 남자 진짜 생리하나? 웬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남편은 씨익 웃는다.
처음엔 어색한지 장난처럼 읽더니 이내 맘이 편안해지나보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읽는다.

내 장래 희망은 아빠가 되는 거다
아빠가 되면 큰 소리를 쳐도 되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고,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보고, 늦게까지 안자도 되니까….

"와 우리 남편 진~짜 잘 읽는다. 이제부터 자기가 내 대신 '책읽어주는 아빠 김기성' 해라."
"그럴까? 정말 나도 자기 따라다니면서 책 읽어주기 봉사할까."
어느새 방에서 나왔는지 큰딸 민정이가 화장실로 들어가며 툭 던지는 말 한마디.
"거봐 엄마, 아빠 생리하는 거 맞다니까. 근데 아빠, 지금 아빠 쫌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