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저자 알렉산더 미카베리즈는 나폴레옹 전쟁에 내재한 18세기 유럽 국가 체제의 불안정성과 지정학적 요인을 분석하여 당시 계속 이어진 전쟁들이 단순히 유럽의 국제 질서 재정립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전 지구적 파급효과를 가져온 세계사적 맥락으로 시좌를 넓힐 것을 독자에게 요구한다. 19세기 초반 유럽과 그들의 식민지에서 벌어진 전쟁의 여파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준 역사적 사실을 가감 없이 파헤친 역작이다.

프랑스 혁명 세력은 자신들이 이룩한 혁명의 성과가 와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포 정치를 펼쳤다. 주변국들은 프랑스 혁명의 성취가 자신들에까지 미칠 것이 두려워 전쟁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다. 나폴레옹은 혁명 세력의 공포 정치가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마무리되는 와중에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명성을 날리며 일개 영관급 군인에서 통령, 황제로 점차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프랑스가 전쟁에 나선 이유였던 혁명 수호의 목표는 영토 확장과 유럽 대륙 패권 장악이라는 전통적인 정책들로 회귀했다. 나폴레옹의 정책은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늘려가고 있던 대영제국과 중부 유럽-아시아로 확장을 꾀하던 러시아, 그리고 그 속에서 틈을 노리는 프로이센,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과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유럽의 열강들은 세력의 균형을 추구하며 이합집산 동맹을 맺으면서도 자신들이 가진 제국적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프랑스는 식민지 확장 경쟁으로 벌어졌던 7년 전쟁의 패전으로 식민지를 상실했으며, 전쟁 빚으로 막대한 재정 손실과 경제 파탄의 악순환에 빠졌다. 프랑스 혁명은 7년 전쟁 패전의 직접적 영향으로 발생한 사태였다. 공포정 이후 집권한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 세력들과 대영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를 창출해 프랑스의 헤게모니를 되찾으려 했다. 유럽 열강은 나폴레옹에 대항하기 위하여 동맹을 맺고 일곱 차례에 걸쳐 대불 동맹 전쟁을 벌인다. 이 기간에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요컨대 전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강한 육군의 힘을 바탕으로 패권을 장악하여 영국에 대한 대륙 봉쇄 체제라는 경제 정책을 도입했고,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이용해서 대응했다. 러시아와 기타 유럽제국들은 밀실 외교를 통해 동맹을 체결하고 파기하고 배신을 일삼았으며,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막 벗어나 탈식민지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나폴레옹이 무리한 러시아 원정 끝에 퇴장하자 유럽은 이른바 빈 체제(유럽협조체제)를 수립하였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한 듯했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였으나, 이 시기에 세계 도처에서 혁명이 벌어지기도 했고, 독일과 이탈리아는 통일을, 오스만 제국은 쇠퇴의 길로, 발칸 반도의 여러 민족은 독립을 꾀했으며, 영국과 러시아는 '그레이트 게임'에 돌입했으니, 당시의 평화는 제1차 세계대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불안한 전조였다.

/이효준 월급쟁이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