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전 인천시약사회장·수필가.
▲ 김사연 수필가∙전 인천문인협회장

영화 '파묘'가 1000만 관객을 앞두고 있지만, 다른 명화처럼 혹평과 호평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LA에 영주하는 재벌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자손이 밤낮으로 우는 병에 걸리자, 무녀에게 거액을 주며 깊은 산 속에 있는, 조선총독부 시절 벼슬한 조상의 유택을 파묘 후 화장해 달라고 한다. 풍수사, 장의사, 무당은 한팀이 되어 재앙의 원인인 쇠말뚝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모 교수는 중앙지에 영화 '파묘'의 왜곡을 지적했다. 쇠말뚝은 1895년 일본이 200여 명의 측량사를 조선에 보냈을 때 측량 삼각점의 표시인데 이를 마치 지기를 끊어 그곳에 터를 잡은 무덤의 후손에게 재앙을 안길 목적으로 박은 쇠말뚝으로 오해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옛날 무녀들이 저주하려는 사람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바늘을 꽂는 것처럼 쇠말뚝도 그런 목적으로 박혔다고 믿는 풍수사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풍수사는 묫자리에 박힌 쇠말뚝을 없애야 재앙이 끝난다며 파묘한 자리를 파헤치지만, 쇠말뚝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400여 년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에 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 휘하 어느 영주의 한 맺힌 정령을 관 속에 가둬 말뚝처럼 세로로 묻은 목관을 발견한다. 조선총독부의 음모였다.

풍수사가 찾던 쇠말뚝이 세로로 묻힌 목관이었다는 발상에 관람객들은 “아!”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 말뚝관 위에 친일파 중추원 부의장의 관을 모셨으니 후손이 안녕할 리가 없다. 파묘 후 정령이 갇힌 말뚝관과 재벌 조상의 관을 화장한 후 자손의 재앙은 끝난다. 비평가의 혹평에도 이 영화가 흥행한 이유는 생소한 단어인 파묘, 쇠말뚝, 풍수지리에 관한 호기심과 무당 역을 비롯한 배우들의 혼신 열연 덕분이었다.

24년 전 조상의 유골을 종친회 납골묘로 모시기 위해 선산의 유택 수십 기를 파묘했던 나에겐 의미 깊은 영화였다. 흔히들 '안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는데 '조상 묫자리 탓'이란 단어가 걸맞다.

어느 날, 선산을 방문한 지관은 한 묫자리 앞에 서더니 후손이 피부병으로 고생하겠다고 혼잣말했다. 그 묘는 명당이라며 조상보다 윗자리에 모셔 분란을 일으킨 자리인데 자손 중엔 뱀살 피부로 고생하는 분들이 있었다.

파묘를 했을 때 대리석으로 장식한 광(壙) 안에는 장마 때 빗물에 휩쓸린 유골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지상과 지하의 명당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선산 아래는 흙이 뽀송뽀송한데 위쪽은 광 안에 물이 가득하고 아카시아 뿌리가 뒤엉킨 묘도 있었다. 300년 전부터 자리 잡아 온 유택을 파묘 후 화장해 납골묘에 모시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행히 선산에선 쇠말뚝도 세로로 누운 말뚝관도 발견되지 않았다.

/김사연 수필가∙전 인천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