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을 함께하며 ‘연대’ 가치 알아

유가족끼리도 의견 충돌, 내부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일 뿐

세월호 참사 10주기, 회의감이 아닌 앞으로 더 해나갈 수 있어
▲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장민경 감독. /사진제공=씨네소파

우리는 안전하고 안녕한 사회에 살고 있을까. 2014년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다음달 10주기를 맞는다. 그러나 참사는 이어진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1995),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1999)과 대구 지하철이 불 탄(2003) 이후에도 그랬듯, 스텔라 데이지호가 침몰(2017)하고 이태원에선 수백명의 시민들이 인명피해를(2022) 당했다.

안전한 사회에 대한 의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의 장민경 감독은 이처럼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속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본다. 상처 가운데서도 서로에게 내민 손으로 연대를 형성하며 삶을 살아갈 힘이 돼주고, 끈끈한 연결을 통해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는 자들의 이야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들의 연대는 어떤 의미일까.

 

다음은 장 감독과의 일문일답.

 

▲ 감독이 ‘연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대학 시절, 다니던 학교에서 돈이 되지 않는 학과들을 통·폐합했다.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포부나 꿈을 가지고 학과에 왔는데 우리가 정말 필요로하고 공부하고 싶었던 게 축소되고 필요 없다는 식으로 무시당하는 걸 보고 존재의 훼손을 처음 경험했다. ‘그럼 가치 있는 게 무엇인가, 누구에게 가치 있어야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하던 중,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을 함께 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공통점이 많았다. 카메라가 없었으면 연결되지 못했을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들에 대한 나의 시선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며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하게 됐다.

이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기록하는 활동을 하며 가치 훼손된 존재끼리 연결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었다. 차별이나 슬프고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통해 다른 분들에게 다가가고 무엇이 이 사회의 문제인지 얘기하는 모습에서 많은 힘을 받았다.

 

▲2017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가로 활동했다. 그때의 경험이 영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 그렇다. (영화의 매개가 되는) CBS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을 촬영하며 다른 참사 유가족분들을 처음 만났고, 다른 참사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굉장히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돼 이어져 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동시에 유가족들이 그런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각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생각하고 사랑을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분들이 참사 이후 이어온 활동들에 대한 생각이 넓어진 건데, (활동에)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연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수 있었다.

다른 참사에, 희생자들도 다르지만 유족들이 연대하면서 함께 참사의 원인과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해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서로 연결되는지 더 공감할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진 당위적으로 ‘연대하면 좋지’ 생각하면서도 확 와 닿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는데, 연대하며 살아오셨던 분들의 삶을 듣다 보면 ‘이게 삶의 길이 될 수 있구나’ 느끼게 된다. 앞으로도 이런 연결 관계가 더 많아지고 끈끈해질 필요가 있는데,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가로막는 시선들이 있다면 바꾸고 싶었다.

 

▲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장민경 감독. /사진제공=씨네소파

▲ 영화 속에서 추모 방식 등을 두고 유가족끼리도 의견 충돌을 겪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 사실 참사 이전엔 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보니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일을 해도 갈등이 있는 게 당연하다. 연대를 얘기할 때 모두가 한 의견을 말하는 게 연대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저마다 좋다고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고 여러 아이디어를 내며 갈등을 빚을 수 있다.

다만 그 지점에서 마음 아팠던 건 유가족들의 갈등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또다시 혐오적 공격을 받게 될 상황을 우려하다 생긴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의견이 달라서 대립하는 것보단 그들 간의 대립이 일어난 이유를 공유하는 게 좋겠단 생각을 했다.

또, 보통 ‘피해자’라고 하면 어떤 슬픔이나 아픔 안에서 한 가지 생각밖에 못 하는, 그러니까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대상화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내부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해 이 활동을 이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어 갈등의 장면을 넣었다.

 

▲ 갈등의 과정을 겪고도 결국 다시 연대하는 이유는 뭘까.

- 정서적 공감대로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같다. 여러 난관에 부딪히고, 의견이 갈리고, 그 시간이 지난하게 길어지며 서로에 대한 서운함도 생기는 거 같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있나. 그럼에도 대부분 결국 다시 모이게 되는 건, 우리가 떨어지고 각자 고립되면 처음 하려고 했던 일, 참사의 진실 규명, 그분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하시는 거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사랑의 방식이자, 희생자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본인을 다잡으려 노력하시는 거 같다. 그래서 오랜 시간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길을 걷지 않음에도 계속 손을 잡고 가시는 거 같다는 생각도 했다.

 

▲ 이들이 연대하기 위해 중요한 건 뭘까.

-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네트워킹 형성이 중요한 거 같다. 우리도 일상에서 친한 친구랑 싸우게 되면 좀 느슨했던 친구에게 가서 풀기도 하고, 그런 시간을 겪다 보면 또 그전 친구랑 사이가 풀어지기도 하듯, 어떤 식으로든 혼자 고립되지 않고 여러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야 할 거 같다.

또, 참사의 책임자들이 제대로 된 해결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할 것 같다. 항상 수습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참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회적 집중도나 정부에서 힘을 쏟는 방향이 바로바로 이동하게 된다. 그럼 이전 참사의 유가족들은 심정적으론 연대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그럼 우리 사건은 어떻게 되는 건가?’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 이런 갈등이 연대를 막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장민경 감독. /사진제공=씨네소파

▲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는 현시점에서 ‘세월:라이프 고즈 온’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 지난한 시간이 지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 안에 있는 어떤 작은 변화라도 잘 포착하는 것이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이 나올 수 있던 것도 그 변화 중 하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유가족들이 시민과 다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연대하려 했던 움직임이 있었기에 이번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10주기인 만큼 그사이 밝혀지지 않았던 것들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그 안에서 누가 함께했는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많이 나와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우리 안에서도 재난에 대한 감각이 많이 달라졌다. 10주기 안에서 우리가 그런 것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어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회의감이 아닌 앞으로 더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먼저, 이 영화를 참사의 유가족뿐 아니라 친구들, 지인들이 보러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언제 어떤 참사의 관계자가 될지 모른다. 나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함께 안전할 수 있는 공간,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그런 순간이 도래했을 땐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을 같이 떠올리며 아무리 세상 끝에 있어도 손 내밀어 줄 누군가 있다는 걸 알게 돼 든든했으면 좋겠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