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더는 방치 못한다니, 전봉준이 귓방망이 갈겼을 일
▲ 두손(臼)에 산가지(爻)를 뿌리며 종아리를 맞아 가면서(子) 배워야(學) 한다. /그림=소헌

조선 말기 두드러지게 피폐한 사회현상은 극단적인 체제의 대립으로부터 나타난다. 정치권력은 왕비의 척족이 쥐고 흔들었는데, 임오군란(1882)으로 인하여 민씨 외척정권이 붕괴되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게 되었다. 다급해진 민씨 수구파는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한다. 청나라는 군대(3000명)를 파견하여 대원군 정권을 붕괴시키고 민씨 수구파를 재집권시킨 후, 조선 속방정책(屬邦 법적으로 독립국이지만 정치·경제·군사면에서 다른 나라에 지배되고 있는 나라)을 자행하며 조선의 자주권을 크게 침해하였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는 봉건체제라는 낡은 틀을 깨뜨리고 근대사회로 나아가려는 변화를 주도하며 청나라에 대한 사대관계 청산을 최우선과제로 여겨 민씨 정권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윽고 청국淸國에 저항하여 조선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추구하며 갑신정변(1884)을 일으킨다. 그러나 청군의 무력공격으로 인해 개화당은 ‘3일천하’를 이루고 몰락한다.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일을 돕고 인민을 편안하게 하다. “우리가 의로운 깃발을 들고 여기에 이른 것은 안으로는 못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외적을 내쫓고자 함이라.” 관료들은 가혹한 세금과 노역으로 민중의 재산을 수탈했는데, 이에 전봉준을 중심으로 반봉건·반외세를 외치며 고부(백산)에서 동학혁명(1894)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외세를 끌어들여 인민을 더욱 심하게 탄압한다. _바람 앞에 놓인 등불은 점차 빛을 잃게 되었고 급기야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만다.

 

 

東 동 [동쪽 / 동녘 / 동이東夷]

 

_①東(동)은 자루 안에 물건을 담아 묶고(束속) 한 번 더 묶은(田) 모양이다. 東(동)은 ‘물건’이라는 의미로 전해져 중국에서는 東西(동서)를 ‘물건’이나 ‘물품’으로 쓴다. ②동쪽에서 해(日)가 올라 나무(木)에 걸치니 ‘東’이라는 고전적 해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木(목)의 오행 방향이 東(동)이니 매우 적절한 견해다. 동방東方을 다스린 주인다운 발상이며, 상고시대 찬란한 문물을 이룬 동이東夷의 물건(東)들이 서역(西)으로 전해진 깊은 뜻이 담겼다.

 

學(_) 학 [배우다 / 학문 / 학교]

 

①學(학)은 아이들(子)이 책상(_) 위에 손(臼 깍지낄 국.변형)으로 산가지(爻효)를 뿌리며 숫자를 배우는 모습이다. ②학문(學)이란 회초리(爻)로 종아리를 맞아(子) 가면서 익히며, 두 손(臼)으로 학생(子)들을 길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회초리(_복)를 넣어 斅(가르칠 효)를 새로 만들었다. ④갑골문에 보이는 學(학)은 집(_멱)을 강조하여 글방(학교)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_(횡)은 그렇게 해서 생겼다. ⑤배움(學)은 문자(文)를 익히는 것이라 _(학)으로도 쓰는데, 중국인들은 왜 _(학)으로 쓰는지 모르겠다.

 

 

‘껍데기만 남은 한미동맹 더 방치할 수 없다’며 다시 정치활동을 하려는 황교안이 방미訪米에 앞서 인천공항에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개나발 분다고 일일이 참견할 수는 없지만, 동학혁명 당시 민영휘(친일반민족행위자)가 씨불인 말이 생각나 열불이 난다. 만일 전봉준이 옆에 있었다면 ‘귓방망이’ 몇 대는 갈겼을 텐데. “청나라 군대가 오면 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학군에 의해 정권을 잃는 것보다는 청나라의 속국이 되더라도 정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1894년 5월 5일과 6일에 청군과 일본군이 제물포에 상륙하게 되었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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