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이었다.

화톳불이 타고 있었다.

겨울 무덤 주위에선 가랑잎 한 장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검게 숯이 되고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당나귀처럼 어둔 산맥을 넘어갔다.

얼음이 벤 돌들이 오래도록 강물 속에서 흐느껴 울었다.

어디선가 쩔렁거리며 자꾸만 요령소리가 들렸다.

사람 하나 없이 저문 산맥을 넘어 시간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었다.

아직 한 번도 가닿지 못했던 시간의 뼈

그 냉기의 뼈를 바르며 빙어들이 눈을 뜨고 있었다.

그들은 여름내 건너지 못한 언 강물을 거스르며

자신들의 생애에 대해, 시간에 대해, 죽음에 대해 골똘해져 있었다.

더는 외롭지 않을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한 방울의 눈물로 밤을 지 새기도 했다.

세상 어디서나 꽃은 피고 꽃은 졌다. 달밤이었다.

강물 속에선 자꾸만 요령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데 한 무더기의 억새가 흔들리고 있었 다.*

발목이 가는 빙어의 옆구리가 물살에 흔들릴 때마다

달빛은 얼음 속에서 하얗게 깊어갔다.

*김춘수 <뭉크의 두 폭의 그림> 중에서

 

▶오랜만에 필자의 '졸시' 한 편을 들여다본다. 과거는 이미 없는 것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것이다. 이미 없는 것과 아직 오지 않는 것의 접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파지 하고 달빛 아래 앉아 화자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당나귀처럼 어둔 산맥을” 자꾸만 넘어가고, “한 무더기의 억새가 흔들리고/ 달빛은 얼음 속에서 하얗게 깊어” 가는데 공명의 요령 소리를 들으며 그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길은 분명 이 한 편의 시 문맥 사이에도 있으리라.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