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소유가 아닌 나눔에 있다
▲ 집게발( )과 몸통(田)과 꼬리( )를 번쩍 든 전갈(萬)은 숫자 '10,000'이다. /그림=소헌
▲ 집게발( )과 몸통(田)과 꼬리( )를 번쩍 든 전갈(萬)은 숫자 '10,000'이다. /그림=소헌

약 200년 전 어떤 사람이 프랑스의 낭트시(市) 교외에다 온천을 짓고, 마차馬車를 대기시키며 손님을 실어 날랐다. 처음에는 ‘온천마차’라는 이름으로 부르다 라틴어 ‘만인을 위한’이라는 뜻을 지닌 ‘옴니버스’로 바꾸었다. 마차는 시민들에게는 널리 알려졌고, 얼마 안 가서 ‘합승마차’로 변했다. 마차에는 계급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탈 수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합승자동차’가 되었으며, 옴니버스 서적이나 옴니버스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한다.

 

5월 초하루(노동절)에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가 있었다. 사제의 길을 지나온 고인의 신조信條(motto)는 ‘옴니버스 옴니아’였다. 그는 “승용차는 처음에 개인용이었다. 부자들만 탔다. 모든 사람이 탈 수 있게끔 만든 게 버스다. 그처럼 모두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그런 삶을 지향志向했다. 바지 한 벌을 18년 동안 입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영위했으며, 각막과 장기까지 모두 기증하였다. 자신을 위해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인만물(萬人萬物) 모든 이에게 모든 것(옴니버스 옴니아 Omnibus Omnia). 정 추기경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의 기원은 이렇다.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 약한 사람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 한 것입니다. 나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이참에 종교별로 다른 ‘죽음’에 대한 표현을 알아보자. 천주교에서는 선종善終(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음)이라 하며, 개신교에서는 소천召天(하늘의 부름을 받다)이라 한다. 천도교에서는 환원還元(본디의 상태로 되돌아감)이라 하며, 불교에서는 입적入寂_멸도滅度_입멸入滅_열반涅槃(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남) 등으로 부른다.

 

志 지 [뜻을 두다 / 본마음]

 

①사(선비 사)와 心(마음 심)이 합쳐진 志(지)의 옛 글자는 사람의 발(__之지) 아래에 심장(心)을 넣어 썼다. 마음(心)이 가는 대로 몸이 간다(之)는 함축이 정확하다. ②志(지)를 글자 그대로 풀어보자. 선비(士)는 바르고 굳은 마음(心)을 지녀야 한다. 이것을 의지意志라고 한다.

 

向 향 [향하다 / 나아가다]

 

①갑골문에 보이는 向(향)은 지붕 아래에 네모난 창문을 그렸는데, 이것을 통해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②창문을 의미하는 _(멀 경)은 부수 _(멀 경)과 같은 글자다. 向(향)은 창문(_경)을 열고 멀리 세상을 향한다(_)는 뜻이다. ③向(향)의 본 글자는 嚮(향)으로서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고향(鄕)을 향해(向) 그리운 마음을 갖게 된다.

 

萬 만 [일만(10,000) / 매우 많다]

 

①갑골문에 확연하게 전갈 모양으로 나타난 萬(만)은 _(풀 초)와 _(긴꼬리원숭이 우)로 모양이 변했다. 집게발(_)과 몸통(田)과 꼬리(_)를 번쩍 든 전갈이 되었다. ②전갈은 알을 1만 개나 낳기 때문에 萬(만)은 숫자 ‘10,000’으로 굳어졌다. ③그러자 원래 뜻을 보존하기 위하여 萬(만)에 _(벌레 충)을 더하여 _(전갈 채)를 새로 만들었다. ④萬(만)을 간략하게 하여 万(만)으로 쓴다.

 

“우리의 재물을 보관할 가장 안전한 금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나눔과 자선慈善의 현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겸손과 청렴을 행복으로 여겼던 故 정진석 作 ‘질그릇의 노래’ 중에서.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