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문 안은 명확한 용도 구분…밖은 시대의 조류 따라 신설

내항 1부두, 시민 위한 해양문화관광지구 변신 중
내항 2부두, 일명 북부두…제2도크 건설로 만들어져
내항 3부두, 돌출부두로 일명 동부두…물양장 갖춰
내항 4부두, 국내 최초 국제 규모 컨테이너 터미널
내항 5부두, 1993년 완공…수출용 자동차 선적
내항 6부두, 청정화물 다루다 최근 일반화물 취급
내항 7부두, 기네스북 등재 사일로 벽화가 명물
내항 8부두, 고철부두로 불리다 개방 위한 재정비
남항, 내항 2배 규모 10만t급 배 정박 가능
북항, 철재·목재·잡화 등 산업 원자재 처리
연안항, 배후 종합어시장 있어 시민 발길 잦아
송도 신항, 컨테이너 물류 허브항만으로 자리매김
경인항, 서해-한강 잇는 아라뱃길 출구에 위치
▲ 인천 내항의 1부두에서 8부두까지의 부두 배치도. 각 부두의 대표적인 취급 화물을 알아볼 수 있다./사진제공=인천지방해양수산청
▲ 인천 내항의 1부두에서 8부두까지의 부두 배치도. 각 부두의 대표적인 취급 화물을 알아볼 수 있다./사진제공=인천지방해양수산청

거대한 도크 완공과 더불어 인천항의 변화된 모습 중의 하나는 이제 일련번호가 붙은 여러 부두들을 도크 내에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 일제 때, 소월미도를 기점으로 안쪽을 내항, 그 밖을 외항이라고 하던, 좀 모호했던 항계(港界) 개념에 대해 분명한 구분을 할 수 있게 된 점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1974년 5월에 완공된 넓은 '호수' 일대, 이른바 제2도크 내부가 내항이고 이 내항 밖을 외항이라 공칭(公稱)한다. 그러니까 내항은 갑문을 통해서만 외항과 연결되는 것이다. 인천항은 이 내항과 외항에 건설된 부두들로 이루어져 있다.

▲ 내항 1·2·3·4부두 전경. 사진 전면 하단이 4부두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남부두, 민자부두로도 불린다. 사진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동부두로 불리는 짧게 튀어나온 돌제부두가 3부두, 그 위쪽 긴 부두가 북부두라는 명칭을 가진 2부두이다. 그리고 맨 위의 과거 제1도크가 있던 자리가 1부두이다. 1·2·3부두는 일반화물 부두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내항 1·2·3·4부두 전경. 사진 전면 하단이 4부두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남부두, 민자부두로도 불린다. 사진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동부두로 불리는 짧게 튀어나온 돌제부두가 3부두, 그 위쪽 긴 부두가 북부두라는 명칭을 가진 2부두이다. 그리고 맨 위의 과거 제1도크가 있던 자리가 1부두이다. 1·2·3부두는 일반화물 부두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내항의 부두들은 1부두부터 8부두까지 연번이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이 8개 부두가 모두 제2도크 완공과 동시에 건설된 것은 아니다. 부두들은 3단계에 걸쳐 연차적으로 건설되었는데, 늦은 부두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공사가 끝나 운영을 시작한 것도 있다. 외항의 부두들은 대부분 제2도크 완공 이후에 축조된 것들이다.

내항 밖에 있는 항구들은 지리적 방위에 따라 남항, 북항, 그리고 연안항으로 부른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인천항은 제2도크 공사와 병행해 바다를 매립해 생긴 남항, 연안항과 서구지역에 축조된 북항 등 4개 항구와, 후일 송도신도시 매립 지역에 축조된 인천신항과 경인아라뱃길의 인천 출구인 서구의 경인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번호가 붙어 있는 내항의 부두들은 각기 다른 화물을 취급한다. 이 글에서는 이들 부두들의 규모나 세세한 제원(諸元) 같은 전문적인 설명은 생략하고 처리 화물이나 명칭, 특징만을 소개한다.

내항 1·2·3 부두는 통칭 일반부두라고 부른다. 이 세 부두에서는 주로 철재, 원목, 사료, 잡화 등의 화물을 취급한다. 제1부두는 기존의 제1도크 부두 일부를 그대로 이용한 것인데, 1부두는 현재 8부두와 함께 해양문화관광지구로서 공공시설 조성을 통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2부두는 일반에게는 생소한 명칭인 북부두(北埠頭)로 불린다. 제2도크 건설로 새로 생긴 부두이다.

3부두는 1부두와 4부두 사이에 돌출 형태로 되어 있는 돌제부두(突堤埠頭)로서 동부두(東埠頭)로 불린다. 이 부두도 제2도크 공사로 생겼다. 물양장을 갖추고 있다.

4부두는 애초부터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설계되었다. 1973년에 준공되어 1974년 5월10일, 인천항 도크 완공과 함께 개장했다. 전전(前前) 제37화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당시 정권의 특혜 시비로 구설에 올랐던 민간자본 곧, 한진과 대한통운이 축조한 부두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 규모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갖추었다. 오늘날은 양곡, 철재, 자동자 등의 일반화물까지 처리하는 다기능, 다목적 부도로 운영되고 있다. 이 부두는 남부두(南埠頭), 민자부두(民資埠頭)로도 불린다.

▲ 자동차 전용부두인 5부두의 공중 촬영 사진이다. 수출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의 질서 있게 도열해 있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자동차 전용부두인 5부두의 공중 촬영 사진이다. 수출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의 질서 있게 도열해 있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자동차 전용부두인 5부두의 공중 촬영 사진이다. 수출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의 질서 있게 도열해 있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자동차 전용부두인 5부두의 공중 촬영 사진이다. 수출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의 질서 있게 도열해 있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6부두는 월미도 동쪽에 축조된 부두로 청정화물을 주로 하역하던 부두이나 근래에는 일반 화물을 취급한다./사진제공=인천지방해양수산청
▲ 6부두는 월미도 동쪽에 축조된 부두로 청정화물을 주로 하역하던 부두이나 근래에는 일반 화물을 취급한다./사진제공=인천지방해양수산청
▲ 양곡 전용 부두인 7부두에 건설된 사일로 풍경이다. 사일로 벽에 그려진 48m의 세계 최고 높이의 벽화는 2018년 12월17일 기네스북에 등재된 명물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양곡 전용 부두인 7부두에 건설된 사일로 풍경이다. 사일로 벽에 그려진 48m의 세계 최고 높이의 벽화는 2018년 12월17일 기네스북에 등재된 명물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5부두는 1993년에 완공되었다. 자동차 전용부두로서 수출용 자동차들이 여기에서 선적된다. 5만t급과 1만t급 선박 총 5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다.

6부두는 1991년에 착공해 1995년에 완공된 부두로, 월미도 동안(東岸)에 자리잡고 있다. 분진이나 오물이 발생하지 않는 펄프 같은 청정화물을 주로 다루었으나. 근래에는 일반을 취급한다.

7부두는 양곡 전용 잔교식(棧橋式) 부두이다. 1973년 10월1일에 착공하여 제2도크 완공 일자보다 늦은 1974년 12월10일에 준공되었다. 이후 1981년부터 1985년에 걸친 제2단계 인천항 개발 사업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양곡 전용부두로 건설되었다. 1982년에는 국내 전체 수입 양곡의 3분의 2가 이 부두를 통해 들어왔다. 1997년 설비 증설과 주변 5개소의 사일로 시설이 부설됨으로써 저장량만도 45만t에 이른다. 특히 대한사일로 외벽에 그린 벽화는 48m의 세계 최고 높이로 2018년 12월17일, 기네스북에 등재된 명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 8부두 야간 풍경이다. 크레인에 8부두 운영 회사였던 '영진공사'의 회사 상호가 야간 조명에도 뚜렷이 보인다. 고철과 청정화물을 취급하던 이 부두는 현재 작업을 중단하고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사진제공=깁보섭 사진작가
▲ 8부두 야간 풍경이다. 크레인에 8부두 운영 회사였던 '영진공사'의 회사 상호가 야간 조명에도 뚜렷이 보인다. 고철과 청정화물을 취급하던 이 부두는 현재 작업을 중단하고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사진제공=깁보섭 사진작가
▲ 남항은 컨테이너 전용부두와 함께 주로 중소형 연안 화물선과 바지선 등이 접안해서 화물을 처리한다. 석탄부두, 모래부두가 있어 민원의 대상이기도 했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남항은 컨테이너 전용부두와 함께 주로 중소형 연안 화물선과 바지선 등이 접안해서 화물을 처리한다. 석탄부두, 모래부두가 있어 민원의 대상이기도 했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내항 8부두는 흔히 고철부두(古鐵埠頭)로 불린다. 수입 고철뿐만 아니라 소금, 원당 같은 산물(散物)을 전용으로 하역하는 부두로서 1985년에 건설된 개발부두였다. 고철 하역 시 소음과 비산먼지, 운반 중 낙철(落鐵) 문제 등으로 30년간 민원의 대상이었다가 현재는 시민들에게 개방하기 위해 재정비 중에 있다.

외항인 남항에서는 컨테이너 전용부두와 함께 주로 중소형 연안 화물선과 바지선 등이 접안해서 화물을 처리하는 부두가 있다. 잔교 및 돌핀시설이 2기씩 설비되어 있는데, 제1잔교는 연안화물선 및 관공서용으로, 그리고 제2잔교는 유선 및 잡종선 기지로 사용된다. 돌핀시설은 유류, 가스 같은 위험물 하역을 위해 항 밖에 별도로 설치한 접안시설이며, 석탄부두는 1980년에 착공하여 1988년 도크 밖 남항 끝단에 건설되었다. 분탄 하역 시 분진 등 환경오염, 생활 불편 등의 이유 때문에 인근 라이프아파트 주민들과 갈등을 빚어 왔다. 모래부두 또한 남항의 골칫거리였다. 남항에는 내항의 두 배 규모인 10만t급 선석이 마련되어 있다.

▲ 서구 원창동의 북항은 원목, 고철 등의 철재, 사료용 부원료 등 산업 원자재 화물을 처리하는 항구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서구 원창동의 북항은 원목, 고철 등의 철재, 사료용 부원료 등 산업 원자재 화물을 처리하는 항구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배후의 산업단지 설치와 더불어 계획되었던 북항은 1991년, 기본설계까지 마쳤으나 수도권의 교통 체증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가 1997년에 준설토 투기장 축조를 시작으로 철재부두, 목재부두, 잡화부두 등을 차례로 축조하면서 2012년 마침내 개장했다. 원목, 고철, 사료용 부원료 등 산업 원자재 화물을 처리하는 항구로 9개 부두에 17개 선석을 가지고 있다. 위치는 서구 원창동이다.

연안항은 일반적으로 연안부두로 명명된다. 배후의 종합어시장 등이 있어 일반 시민의 수시 접근이 가능한 유일한 항구라고 할 것이다. 연안여객항구와 국제여객항구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여객항구는 두 개의 터미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1터미널은 송도 신항에 새 국제여객터미널 설치로 폐기되었다. 연안여객항구는 제주, 백령, 연평, 덕적, 이작, 풍도 등 6개 항로의 연안여객터미널권과 영종도를 운항하는 월미도권으로 나뉜다. 중단되었던 제주 운항은 올해 9월에 재개된다고 한다.

▲ 인천신항은 국제적으로 증가하는 컨테이너 화물의 수요에 맞춰 송도신도시에 건설한 컨테이너 허브 항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인천신항은 국제적으로 증가하는 컨테이너 화물의 수요에 맞춰 송도신도시에 건설한 컨테이너 허브 항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경인항은 서해와 한강을 잇는 아라뱃길 끝, 인천 서구 오류동에 있다. 경인운하는 고려 때부터 시작해 조선조까지도 굴착 시도가 이어졌었으나 굴포천이라는 이름만 남긴 채 끝내 성공하지 못한 뱃길로 2009년에 경인항으로 지정된 후 2012년에 정식 개통했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경인항은 서해와 한강을 잇는 아라뱃길 끝, 인천 서구 오류동에 있다. 경인운하는 고려 때부터 시작해 조선조까지도 굴착 시도가 이어졌었으나 굴포천이라는 이름만 남긴 채 끝내 성공하지 못한 뱃길로 2009년에 경인항으로 지정된 후 2012년에 정식 개통했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블로그
▲ 연안부두는 연안여객항구와 국제여객항구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어시장과 위락시설 등이 있어 일반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부두이다. 사진은 소형 선박들이 모여 있는 잔교 풍경이다./사진제공=깁보섭 사진작가
▲ 연안부두는 연안여객항구와 국제여객항구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어시장과 위락시설 등이 있어 일반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부두이다. 사진은 소형 선박들이 모여 있는 잔교 풍경이다./사진제공=깁보섭 사진작가

송도신도시 인천신항은 2009년 1단계 컨테이너터미널부두 공사를 시작하여 2015년에 개장했다. 인천항 컨테이너 물류 허브항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인항은 서해와 한강을 잇는 아라뱃길 끝의 인천 서구 오류동에 있다. 경인운하는 고려 고종 때 굴착을 시도했고, 조선조에서도 다시 굴착 시도가 있었으나 굴포천이라는 이름만 남긴 채 끝내 성공하지 못했던 뱃길이다. 1966년 제2도크 건설 시공 때, 박 대통령이 개착 포부를 밝힌 바도 있었는데, 결국 2009년에 경인항으로 지정되고 2012년에 정식 개통함으로써 800년 역사의 한을 풀게 된다.

이로써 인천항의 대략적인 얼개를 살펴보았다. 남의 나라 항구처럼 시민과는 담을 쌓고 있어 볼 수 없고,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머나 먼 인천항'을 이해하는 데 있어 작으나마 한 계기라도 된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김윤식 시인·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