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6·13 지방선거 날 출구조사 방송은 가히 충격이었다. 지지 후보_정당을 떠나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했다. 기초의회들까지 파란색 일색이었다.

한해 전 4·15 총선 날 저녁도 그랬다. 그 날은 한 술 더 떠, 출구조사를 확인사살하고도 몇 석을 더 보탠 여당 압승이었다.

다시 1년이 흘러 지난 7일 저녁. 이번에 그 반대편에서 장탄식이 터져나왔다. 침몰했던 야당이 한순간에 완승을 거머쥐었다.

민심은 심술궂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우기도,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더니. 그런데 왜 평소에는 본색을 숨기고 있다가 선거날 저녁에만 '서프라이즈' 하는 것인지.

#일본은 16세기를 전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살았다. 사무라이들의 전성시대, 전설적인 무장(武將)들도 여럿 나왔다. 영화 '가케무샤(影武者)'로 그려진 다케다 신겐이라는 무장도 있었다. '가이(甲斐)의 호랑이'라 불리며 평생 싸움터를 전전한 끝에 나름의 전쟁론까지 남겼다. 이름하여 '5할의 승'론(論)이다.

'무릇 승리는 5할의 승리를 최상으로 삼는다.' '7할의 승리는 중급, 10할 완승은 하급으로 삼는다. 왜냐하니 5할의 승리는 용기를 낳고, 7할의 승리는 게으름을 낳고, 10할의 승리는 교만을 낳기 때문이다. 10할의 승리 뒤에는 10할의 패배가 따르지만, 5할만 이기면 패배할 때도 5할로 수습이 된다.' 여기서의 할(割)은 할, 푼, 리 등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로 10%를 뜻한다.

요점은 '승자의 교만'이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는 피하기 어려운 운명같은 함정이다.

#4·7 선거 직후에도 참으로 겸손한 다짐들이 쏟아졌다. “국민들께 큰 실망을 드렸다. 국민들이 됐다 할 때까지 혁신하겠다.” “우리가 잘해서 표를 찍어준 게 아니라는 뼈 아픈 지적을 받아안겠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 다짐들의 메아리가 채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국민들이 됐다 할 때까지…'라던 쪽에선 국립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피해자님이시여'라고 했다. 졸지에 성추행 피해자들이 순국선열의 반열에 올려놓아진 것이다. 이번엔 '사죄 호소인'인가.

'잘해서 찍어준 게 아닌 줄 안다'던 쪽에서는 뜬금없이 대법원장 출근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뭔가 했더니, 당내 선거를 겨냥한 지역계파 출석점호 자리였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똘똘 뭉쳐 도로 영남당으로 가자는 단합대회였던가.

'분위기 좋아졌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야당에서는 퇴장했던 선수들도 다시 머리를 들이민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기웃거리는 셈이다. 이러니 여당이든, 야당이든 '인적 쇄신'은 금기어다.

선거 직후 목소리 좀 가다듬던 여_야 초선의원들은 알아서 꼬리를 내렸다. 이번에 2030 지지를 끌어오느라 목이 쉬었던 야당내 3040 기수들도 금방 찬밥신세다. 멀리 독일에서는 '40세 아주머니 총리'가 거론된다고 한다. 그러나 여의도에서는 '물은 역시 고인 물이 최고'라는 강변이다.

'어쩌다' 10할의 승을 선물 받은 야당은 아예 표정관리도 팽개친 듯 하다. 벌써부터 '이대남'들이 떠난다지만 진흙밭 당권 다툼이 먼저다.

#10할의 승리는 '독이 든 성배'다. 수천년 전부터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구약성서)” 했지만 인간들은 늘 그래왔다. 이 다음에 '독이 든 성배'를 들이킬 차례는 누구인가. 지금도 심술궂은 '민심'은 저기 어둠 속에서 눈만 번뜩이며 '교만' 지수를 체크하고 있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