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명 덮친 화염에 재로 화한 '오래된 신대륙'

 

▲ 영화 '미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 앞에서 오보에를 부는 장면.
▲ 영화 '미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 앞에서 오보에를 부는 장면.

 

“밀림의 아이입니다. 인간 목소리를 지닌 짐승이죠.”

스페인 귀족 돈 카베자는 과라니족 아이를 칼로 복종시키고 채찍으로 일을 시켜야 하는 짐승이라고 주장하며 원주민의 노예화·식민화를 정당화한다. 이에 산 카를로스 선교회의 가브리엘 신부는 원주민은 짐승이 아닌 영적인 존재라고 반박하며 이구아수 폭포 위쪽은 신과 과라니족 땅이라고 분명히 못 박는다.

영화 '미션'(1986)은 1750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경계지역의 이구아수 폭포 위쪽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침략자들에 의해 벌어진 역사적 실화 '과라니족 학살'을 다룬 로버트 드 니로, 제레미 아이언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이구아수 폭포의 장엄한 아름다움과 위력 앞에서, 그리고 과라니족의 해맑은 웃음과 비통한 죽음 앞에서 관객들을 숙연해지게 만든다. 칸영화제를 일순간 '속죄의 장'으로 탈바꿈시킨 이 영화는 기립박수와 함께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서구인의 엇나간 소명의식이 불러들인 남아메리카의 참극

이구아수 폭포 위 밀림에 사는 원주민 과라니족이 주술사의 지시에 따라 예수회 사제를 나무에 묶은 채 강물에 던져 버린다. 사제는 물살에 떠내려가다가 거대한 폭포에 의해 삼켜진다. 그의 순교에 뒤이어 가브리엘 신부가 폭포 위 밀림으로 향하고 오보에 연주로 영적 교감을 시도한다. 음악소리는 원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드디어 폭포 위에 예수회 사제들과 과라니족이 함께 지은 선교회가 들어선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과라니족 미래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영화는 가브리엘 신부의 선교와 순교를 그림으로써 남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에게 들이닥친 비극적 운명을 조명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참극이 바로 서구중심주의에 매몰된 서구인의 엇나간 소명의식 때문임을 폭로한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고로 진보를 앞세우며 아메리카를 점령한 서구 문명의 침략자들이나, 주님의 소명을 앞세운 기독교 선교사들이나 모두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롤랑 조페 감독은 은연히 드러낸다.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지닌 원주민의 세계를 완전히 파괴해버리고 그 잿더미 위에 자신들의 세계를 세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실 서구 문명인은 구세주가 아닌 속죄자일 뿐인 것이다. 한때 노예사냥꾼이었던 로드리고는 자신의 죄를 상징하는 짐을 끌며 폭포 위를 오르내리는 힘겨운 '속죄의 길'을 걷고, 결국 과라니족의 용서로 참회하여 사제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폭력적 저항을 선택한다. 반면에 가브리엘 신부는 “주님은 사랑이다”는 신념으로 비폭력 저항을 고수한다. 결국 신부는 원주민들과 함께 총탄이 쏟아지는 적진을 향해 평화 행진을 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화염 속에서 허망하게 죽는 신부의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로드리고도 눈을 감는다. 구원도 없었고 기적도 없었다. 원주민들의 비참한 죽음뿐… 뼈대만 앙상히 남은 잿더미의 선교회 건물을 뒤로 한 채 살아남은 아이들은 카누에 올라 힘껏 노를 저어 나아간다. 문명의 불길이 미치지 않는 깊은 밀림 속으로…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이 오래된 대륙을 '신대륙'으로 탈바꿈시켰을 때 이미 대재앙의 서곡이 시작된 것이다. 그 후 몇백 년 동안 서구 기독교인들이 '신의 소명'을 내세우며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간도, 동물도,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알베르 카뮈는 한탄한다. “제국과 교회는 죽음의 태양 밑에서 태어난다”고.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