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받은 다국적 기업의 대표는 글로벌 석유가스 업체들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2020년 225억 달러(약 25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40년만에 첫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엑손모빌은 지난해 1만4천여명을 감원하며 외형을 축소하고 있지만 주가는 지난 일년간의 흐름으로 보면 25%나 하락했다. 이에 따라 경영난을 겪고 있는 또다른 미국의 석유 메이저인 세브런과의 합병을 타진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영국의 석유회사 BP도 지난해 연속으로 57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해 전체 고용직원 중 15%에 달하는 1만여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석유 대기업인 로열더치셸도 45억 달러의 추가 자산 상각과 이미 1600명을 감축한 상황에서 9천여명을 추가로 감축할 예정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에너지 기업인 토탈도 경영수지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근 한 세기 동안 글로벌 다국적 거대기업의 대명사로 호황을 누리던 주요 산업국가의 석유회사들이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기록을 계속하고 있는 이면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세계 감염사태로 수요가 침체되면서 원유가격이 폭락하였고 세계적인 탈탄소 운동이 석유산업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헤지펀드인 '엔진 넘버원'은 엑손모빌에 추천한 재생 에너지 관련 전문가 4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달라고 요구했다. 석유 중심의 사업구조와 기존 이사회 인사들로는 에너지 시장의 격변기에 대처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같은 압력에 따라 엑손모빌은 지난해 말 석유생산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2025년까지 15~20% 낮추겠다고 밝혔다. 친환경 투자가 단체인 '팔로디스'도 영국의 BP 총회에서 석유·가스 사업을 줄이고 저탄소 사업 투자를 확대해 달라고 요구했다. BP는 탄소중립 목표 실현을 위해 '팔로디스'와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프랑스의 토탈은 색다른 곤경에 처했다. 나폴레옹이 창립한 프랑스의 MIT로 불리는 에콜 폴리테크닉은 대기업 간부와 고위관료를 배출하는 엘리트 양성전문학교다. 토탈이 다목적으로 연구센터를 에콜 폴리테크닉에 건립하려 하자 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기후변화를 실감하는 시점에서 화석에너지 개발과 판매에만 집착하는 회사의 홍보차원적 연구센터는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집착과 저항은 대학에서 환경 관련 강의가 필수화되고 마크롱 대통령도 환경보호 조항을 헌법에 추가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했지만 석유회사에 대한 대학생들의 전방위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신용석 언론인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