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저편 새 땅으로 가는 귀환의 여정
▲ 영화 '정복자 펠레' 중 에릭이 먼 바다 저편을 바라보며 자유의 땅을 그리는 장면.

“난 자유의 몸이 되고 싶어. 그 때를 기다리는 거야. 그걸 간절히 원해.”

덴마크 스톤농장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에릭은 먼바다 저편을 바라보며 2년 뒤 눈이 녹기 시작하면 세계를 정복하러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소년 펠레에게 위대하고 신기한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일깨우며 꿈을 심는다. 소년은 고된 노동과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손꼽아 기다린다. 얼른 눈이 녹아 봄이 오기만을…

영화 '정복자 펠레'(1987)는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의 동명소설을 각색하여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일자리를 찾아 덴마크로 건너온 스웨덴 노동자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덴마크 거장 빌 어거스트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은 이국땅에서 착취당하며 노예처럼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예리한 시각으로 담아내어 빛나는 찬사와 함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이원성의 '마야의 세계' 속 타락한 인간들의 군상

짙은 안개로 뒤덮인 바다 위로 뱃고동 소리와 함께 거대한 선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선박 위에 빼곡히 들어앉은 승객들 틈에 낀 한 소년이 난간에 기대 곧 도착할 낯선 땅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펠레는 이 새로운 나라에선 아이들이 일 안 하고 종일 놀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기대감으로 부푼다. 그러나 스톤농장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소몰이꾼으로 일하게 된 이들 부자는 외양간 숙소에서 머물며 다른 스웨덴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된 노동으로 혹사당한다. 영화 속에서 스톤농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물들의 저주받은 삶은 바로 인류의 타락으로 인한 결과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이원성의 마야(Mkyk, 환영)의 세계로 내쫓기면서 인류의 타락은 시작되었고 저주받은 메마른 황무지에서의 가혹한 삶도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에덴동산에서의 생활을 망각한 채 지금까지도 세속적 욕망에 얽매여 고통과 수고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불교의 '안수정등(岸樹井藤)' 우화 속 절벽에 매달린 채 꿀물을 탐닉하는 나그네처럼 말이다. 소소한 물질적 만족을 꿈꾸며 돈을 벌려고 비굴한 삶을 사는 펠레의 아버지나, 농장주 편에 서서 하찮은 권력을 휘두르며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작업 감독이나, 처조카까지 탐내며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난봉꾼 농장주나 모두 정신적으로 메마른 황무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에릭은 손풍금 연주로 자유의 외침을 대신하며 지옥 같은 세상에 대항한다. 그러나 농기구가 무기로 돌변하는 순간 그의 바다 저편 여행도 수포로 돌아간다. 펠레는 바보가 된 에릭의 망각을 일깨우려고 애써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펠레에게도 망각의 위기가 찾아온다. 견습감독의 자리를 꿰차고 권력의 장화를 신는 순간 달콤함에 빠져든 펠레는 에릭의 손풍금 소리에 번쩍 깬다.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눈이 녹기 시작한 때가…

구약성서의 대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새 하늘, 새 땅은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거룩한 세계이다. 바로 태초에 인류가 떠나온 망각된 고향인 것이다. 마야의 땅을 떠나 바다에 도착한 소년 앞에 배가 한 척 다가온다. 바다 저편으로 인도할 붓다의 배가…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