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화재보다 나쁜 '인재'
▲ 재앙(災)에서 수재(水災)와 화재(火災)보다 더 나쁜 것은 인재(人災)다. /그림=소헌

향토적인 농촌을 배경으로 하면서 농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농촌소설을 추려 볼라치면 이광수의 <흙>과 심훈의 <상록수> 그리고 이기영의 <고향>을 주저 없이 뽑는다. 이 중에서 고향은 경향(傾向)소설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억나게 하는 가치를 세웠다.

5년 만에 유학에서 돌아온 희준의 고향에는 철도가 놓이고 공장이 들어섰으나 땅은 더 황폐해지고 농민들은 가난을 면치 못해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집을 떠났다. 그는 소작을 하며 계몽활동을 벌였으나 마름과 갈등을 빚는다. 마름의 딸(갑숙)은 애비의 이런저런 행동에 반감을 품고 집을 나와 공장에 취직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한다. 한편, 마을에는 풍년이 들었어도 소작농에게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게다가 수재水災가 들어 가난에 허덕여 희준은 마름에게 소작료 감면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갑숙과 힘을 합쳐 투쟁함으로써 마침내 마름으로부터 요구를 얻어낸다. (<고향> 요약.)

공탄사음(空呑舍音) 공것이라면 마름쇠도 삼킬 놈. 마름쇠는 송곳처럼 뾰족한 네 개의 발을 가진 쇠못이다. 방파제로 사용하는 사발이(테트라포드) 닮았다. 아무렇게나 흩어두어도 바로 선다. 몹시 탐욕스러운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지주의 땅을 관리하는 마름(舍音사음)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그들은 양반은 아니었으나 문자를 알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철저히 지주 편에서 소작농을 착취하고 괴롭혀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마름은 오직 지주(舍)의 소리(音)만 들었다.

 

災 재 [재앙 / 죄악]

①천재지변으로 인해 물(_천)이 넘쳐 홍수가 난 데다가 불(火화)이 나서 살림을 태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재앙(災殃)을 말한다. ②물과 불의 재앙(災재)보다 더 큰 재앙인 滅(멸)은 물(_)과 불(火)로 쓸고 간 뒤에 적군이 쳐들어와 창(戌술)으로 찌르는 형국이다. 완전히 망하게 된다. ③실상 수재(水災)와 화재(火災)보다 더 나쁜 것은 인재(人災)다. 순전히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는 기업이나 이를 감독하는 관청의 역할이 중요하다.

 

害 해 [해롭다 / 해치다]

①_(집 면)은 온통 지붕과 지붕으로 연결된 큰 집이다. 이를 ‘갓머리’라고 잘못 가르쳤다. ②보통 사대부들의 종가(_)에는 예쁜(_봉) 하녀들이 많았다. 행여 머슴들이 그녀들을 보고 주둥이(口구)를 잘못 놀리다가는 크게 해(害)를 입게 된다. ③집(_) 안에서 형제들이 어수선하게(_개) 다투면서(口) 해치는(害) 모습이기도 하다.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황유미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하였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드러난 회사 내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노동권 확보를 위해 ‘반올림’을 발족했다. 겨우 2018년이 되어서야 삼성전자는 피해자 보상과 재발방지 등이 담긴 합의서에 서명했다.

노동자의 존엄과 향상된 삶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대상의 범위를 쏙 빼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제정되었다. 아침에 집을 나와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가 하루 8명으로 여전히 OECD 산업재해(산재産災)로 인한 사망자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른바 누더기로 비유되는 법이 된 뒷문에는 거대 양당의 미온적인 태도와 그들을 조종하는 막강한 자본세력이 있었다. 그대들이 노동자의 피맺힌 소리를 듣지 않고 기업주의 마름 짓을 한다면 ‘마름쇠를 삼키는 놈’밖에 더 되겠는가?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