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진 일몰, 2020년.

2020년 12월31일 오후 5시26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자년(庚子年) 쥐띠해의 마지막 해가 인천 서구 정서진 너머 황해 저편으로 넘어간다. 십이지신 중 쥐는 소의 등을 타고 끝내 1등을 한 영리한 동물로 다산과 풍요, 번영을 상징한다. 우리는 경자년을 맞이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 풍요로울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인류는 18세기 흑사병(페스트) 이후 가장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고 하루하루 위기 속에서 한 해를 보냈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소소했던 일상들이 송두리째 멈춰 버린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에서 '탈(脫)마스크' 로 바뀌어 버렸다.

18세기의 흑사병은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예술은 심각하게 퇴보했다. 예술은 창의력의 발로(發露)이다. 흑사병에 걸려 많은 예술가들이 죽은 후 그 자리를 대신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창작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예술가들의 여행도 당연히 금지되었다. 관련된 산업이 위축되었고 사회 계층의 급격한 변동도 수반되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지주들의 파산도 줄을 이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전시할 곳이나 공연할 기회가 마땅치 않은 예술가들은 춥고 배고픈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물론 매출 하락으로 허리띠를 조이며 한 해를 보내는 중소기업의 한숨 소리가 땅이 꺼지는 듯 다가오는 연말이다.

아름다운 황해의 마지막 일몰이 저 원수 같은 코로나19를 가져가 버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올해는 출입금지로 정서진에 가지 못하니 아파트 베란다에서라도 해넘이를 하며 신축년(辛丑年)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도해야겠다.

/포토저널리스트